【짬】 ‘창립 5돌’ 통일코리아협동조합 박예영 이사장
“지금 내가 먹고살 것만 생각하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작은 통일’을 살아야 합니다.”
통일기도사역자로 불리는 박예영 통일코리아협동조합(이하 조합) 이사장의 말이다. 그는 함경북도 김책시에서 태어나 두 차례 탈북 끝에 2002년 남한에 왔다. “너무 배가 고파 22살이던 1997년 첫 탈북을 했어요. 3년 동안 중국에서 지내다 공안에 잡혀 신의주로 북송됐죠. 2001년 재탈북해 중국 심양과 타이를 거쳐 남한으로 올 수 있었어요.”
그는 이 땅을 밟기 전 3개월 머물렀던 타이에서 “하나님을 만나” 기독교 신자가 됐다. 2004년엔 감리교신학대에 들어가 석사까지 땄다. 지금은 미국 웨슬리신학대학원 목회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그가 2016년부터 이사장으로 이끌고 있는 통일코리아협동조합은 올해 창립 5돌을 맞는다. 지난 14일 서울 청파동 조합 사무실에서 박 이사장을 만났다.
“2005년부터 10년 동안 기도운동을 했어요.” 기도사역에 온 힘을 기울일 때 그의 이름은 ‘오테레사’였다. 같이 일하던 한 목사가 지어주었다. “2005년 태백산에서 텐트를 치고 40일 기도를 했어요. 그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한국 사회 회복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죠.” 북한을 위한 기도는 2008년부터 시작했단다. “한국 사회를 위한 기도를 하고 단체를 만들며 일하다 보니 통일을 위한 기도를 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두번째 탈북 시도 만에 2002년 남으로
“잠시 머물던 타이에서 하나님 만나”
2005년 태백산 천막서 ‘통일기도’ 시작
신학대·대학원 거쳐 미국 박사과정 2013년 ‘통일준비하자’ 조합 결성 나서
“남쪽 개인주의 넘어 ‘작은 통일’부터” 2012년엔 <통일코리아를 세우는 100일 기도>란 책을 묶어냈다. 종교와 정치, 경제 등 여러 영역에서 남과 북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이를 토대로 기도하자고 제안했단다. 그런데 이 책을 두고 교계 한쪽에서 ‘종북 논란’이 일었다. “남과 북을 함께 비판했다는 이유에서죠.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자유나 인권 보장 등 모든 게 다 좋아 보였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자유란 이름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걸 깨달았죠. 이 연장선에서 통일을 보니까 남과 북이 함께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말 때문에 엄청 공격을 받았어요.” 남한의 문제란? 그는 지나친 개인주의와 물질숭배를 얘기했다. “(남한에선) 아파트 위·아래 집이 누군지 알 필요가 없어요. 개인주의가 너무 심해요. 옆집 사람이 죽어도 모릅니다. 북은 물론 감시체제이지만 다 알고 지내죠. 누가 아프면 다 압니다. 명절 땐 떡그릇이 오갑니다. (남한은) 잘살아보자고 ‘냅다’ 달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가정과 이웃 같은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어요.” 그가 남한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 첫손에 꼽는 게 교회다. “교회의 정체성은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다. 그런데 돈이나 성과 같은 윤리 영역에서 계속 문제가 생기잖아요. 이러니 우리가 뭐라고 말해도 세상 사람들은 ‘너희나 잘해라’라고 합니다. 특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목사가 은퇴하며 교회에서 수십억원을 가져가는 것입니다. 웃기는 일이죠. 교회는 하나님 뜻으로 성장했어요. 돈이 어렵게 사는 빈민촌으로 가야지 왜 목사에게 갑니까.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서 뭘 배우겠어요.” 조합은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동북아 비서관을 지낸 배기찬씨와 통일 관련 인터넷 언론 <유코리아 뉴스> 운영자인 김성원씨 등이 2013년 ‘이미 온 통일을 준비하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기독교 단체들이 2008년부터 열어온 통일비전캠프에서 알게 된 배씨가 북향민을 대표해 박 이사장의 조합 참여를 권했단다. 박 이사장은 지난달 연임이 결정돼 내년까지 조합을 이끈다. “남북관계가 암울하던 시절이었으니 (조합 창립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죠. 하지만 통일을 계속 노래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곧 일어날 일이니까요.”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을 누구보다 벅찬 감격으로 맞았다고도 했다. “2011년부터 제 나름의 영적인 눈으로 이런 상황을 예측했거든요.” 그는 조합의 활동을 연애에 견줬다. “남녀 관계도 결혼을 앞두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 절대 필요하듯, 남북도 연애하듯 통일 준비를 해야 해요.” 조합원 260여명의 98%는 기독교도다. 계간지 <통일 코리아>(발행 일시 중단)와 인터넷 언론 <유코리아 뉴스>를 내고, 찾아가는 통일 콘서트를 열어왔다. 북에 대한 이해를 돕는 통일 콘서트는 반응이 뜨거워 올해는 교회와 일반 시민 대상으로 나누어 열어 힘을 더 쏟을 참이다. 그는 특히 3만 북향민의 경제적 자립을 돕기 위한 사업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 신학도인 그가 시간을 쪼개 아주대 경영대학원에 들어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조합이 만든 온라인 쇼핑몰에선 현재 다섯명의 북향민 사업가가 만든 제품이 팔리고 있다. “북 출신 사업가들을 만나 고충도 듣고 도우려 해요. 그들이 남한에서 자립해 통일되면 북에 가서 그쪽의 언어로 사업할 수 있도록 해야죠.” 그는 2009년 남한 출신인 김승근 목사와 결혼했다. 남편 역시 “통일에 미친 사람”이란다. 김 목사는 북향민 창업 모델을 만들 목적으로 2년 전 컵밥 프랜차이즈인 ‘아리랑노점’ 숙대점을 열었다. 하루 매출이 100만원을 넘는다고 했다. “북향민 청년 2명을 직원으로 두고 있어요.” 그는 ‘자식에 대한 미래 투자’라 생각하고 통일에 관심을 가져달라면서 덧붙였다. “남한 분들이 개인주의를 뛰어넘어 민족과 국가적 차원에서 남과 북의 미래를 내다보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박 이사장은 북한에서 고교를 나온 뒤 대학 진학을 포기했단다. “고교 선생님이 재학생 성적 조작을 한 사실을 제가 김책시당에 익명으로 고발한 게 문제가 되었죠. 이 때문에 대학에 갈 수 없었어요.” 익명인데 어떻게 고발자를 알았을까요? “학교에서 ‘너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고 하더군요.”
“잠시 머물던 타이에서 하나님 만나”
2005년 태백산 천막서 ‘통일기도’ 시작
신학대·대학원 거쳐 미국 박사과정 2013년 ‘통일준비하자’ 조합 결성 나서
“남쪽 개인주의 넘어 ‘작은 통일’부터” 2012년엔 <통일코리아를 세우는 100일 기도>란 책을 묶어냈다. 종교와 정치, 경제 등 여러 영역에서 남과 북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이를 토대로 기도하자고 제안했단다. 그런데 이 책을 두고 교계 한쪽에서 ‘종북 논란’이 일었다. “남과 북을 함께 비판했다는 이유에서죠.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자유나 인권 보장 등 모든 게 다 좋아 보였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자유란 이름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걸 깨달았죠. 이 연장선에서 통일을 보니까 남과 북이 함께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말 때문에 엄청 공격을 받았어요.” 남한의 문제란? 그는 지나친 개인주의와 물질숭배를 얘기했다. “(남한에선) 아파트 위·아래 집이 누군지 알 필요가 없어요. 개인주의가 너무 심해요. 옆집 사람이 죽어도 모릅니다. 북은 물론 감시체제이지만 다 알고 지내죠. 누가 아프면 다 압니다. 명절 땐 떡그릇이 오갑니다. (남한은) 잘살아보자고 ‘냅다’ 달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가정과 이웃 같은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어요.” 그가 남한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 첫손에 꼽는 게 교회다. “교회의 정체성은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다. 그런데 돈이나 성과 같은 윤리 영역에서 계속 문제가 생기잖아요. 이러니 우리가 뭐라고 말해도 세상 사람들은 ‘너희나 잘해라’라고 합니다. 특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목사가 은퇴하며 교회에서 수십억원을 가져가는 것입니다. 웃기는 일이죠. 교회는 하나님 뜻으로 성장했어요. 돈이 어렵게 사는 빈민촌으로 가야지 왜 목사에게 갑니까.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서 뭘 배우겠어요.” 조합은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동북아 비서관을 지낸 배기찬씨와 통일 관련 인터넷 언론 <유코리아 뉴스> 운영자인 김성원씨 등이 2013년 ‘이미 온 통일을 준비하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기독교 단체들이 2008년부터 열어온 통일비전캠프에서 알게 된 배씨가 북향민을 대표해 박 이사장의 조합 참여를 권했단다. 박 이사장은 지난달 연임이 결정돼 내년까지 조합을 이끈다. “남북관계가 암울하던 시절이었으니 (조합 창립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죠. 하지만 통일을 계속 노래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곧 일어날 일이니까요.”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을 누구보다 벅찬 감격으로 맞았다고도 했다. “2011년부터 제 나름의 영적인 눈으로 이런 상황을 예측했거든요.” 그는 조합의 활동을 연애에 견줬다. “남녀 관계도 결혼을 앞두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 절대 필요하듯, 남북도 연애하듯 통일 준비를 해야 해요.” 조합원 260여명의 98%는 기독교도다. 계간지 <통일 코리아>(발행 일시 중단)와 인터넷 언론 <유코리아 뉴스>를 내고, 찾아가는 통일 콘서트를 열어왔다. 북에 대한 이해를 돕는 통일 콘서트는 반응이 뜨거워 올해는 교회와 일반 시민 대상으로 나누어 열어 힘을 더 쏟을 참이다. 그는 특히 3만 북향민의 경제적 자립을 돕기 위한 사업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 신학도인 그가 시간을 쪼개 아주대 경영대학원에 들어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조합이 만든 온라인 쇼핑몰에선 현재 다섯명의 북향민 사업가가 만든 제품이 팔리고 있다. “북 출신 사업가들을 만나 고충도 듣고 도우려 해요. 그들이 남한에서 자립해 통일되면 북에 가서 그쪽의 언어로 사업할 수 있도록 해야죠.” 그는 2009년 남한 출신인 김승근 목사와 결혼했다. 남편 역시 “통일에 미친 사람”이란다. 김 목사는 북향민 창업 모델을 만들 목적으로 2년 전 컵밥 프랜차이즈인 ‘아리랑노점’ 숙대점을 열었다. 하루 매출이 100만원을 넘는다고 했다. “북향민 청년 2명을 직원으로 두고 있어요.” 그는 ‘자식에 대한 미래 투자’라 생각하고 통일에 관심을 가져달라면서 덧붙였다. “남한 분들이 개인주의를 뛰어넘어 민족과 국가적 차원에서 남과 북의 미래를 내다보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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