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친선관람단, 중국 경제 학습
김정은 2013년부터 개방 밑그림
① 평양 인근까지 경제개발구 확대
② 인센티브 도입과 시장경제 허용
③ 2016년엔 5개년 경제계획 제시
김정은 2013년부터 개방 밑그림
① 평양 인근까지 경제개발구 확대
② 인센티브 도입과 시장경제 허용
③ 2016년엔 5개년 경제계획 제시
지난 14일 방중한 북한 참관단이 15일 오전 중국 농업과학원 작물과학연구원을 참관하기 위해 방문했다. 베이징/연합뉴스
시안·상하이 등 성장 거점 방문
40년 전 중 경제사절단과 흡사 안보환경 개선 없인 개혁 한계
북미회담으로 제재 풀 필요 커 ■ “중국 개혁·개방 경험 배우러 왔다” 박태성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친선관람단’은 15~16일 베이징에서 ‘중국의 실리콘 밸리’로 불리는 중관춘과 중국 첨단농업 기술 현장인 농업과학원, 베이징시 기초시설투자유한공사 등을 찾았다. 이어 17일에는 내륙 성장의 거점도시인 산시성 시안, 19일에는 중국의 대표적인 경제도시 상하이를 둘러봤다. 박태성 단장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주석을 만나 “(조선노동)당이 경제 발전에 우선 역량을 집중하는 새 전략노선을 관철시키는 데 적극적 역할을 하”고자 “중국의 경제 건설 및 개혁·개방의 경험을 배우”러 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친선관람단 중국 파견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전략 목표로 천명한 4·27 판문점 선언, “혈연적 유대”(다롄회담)를 강조한 북-중의 전략적 협력, 무엇보다 북-미 정상회담 뒤 안보 환경 개선, 제재 해제와 맞물려 본격화할 ‘김정은식 경제 개혁·개방’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중국 개혁·개방 전문가인 안치영 인천대 교수는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은 기본적으로 (경제 분야에서) 자율성을 인정하고 서구에 개방을 하는 것”이라며 “시·도당위원장 등 참관단의 방중은 과거 중국이 공식적인 개방을 결정하기 전, 또 직후에 실제로 대규모 (경제) 사절단을 서유럽 5개국, 동유럽, 홍콩, 마카오 등으로 파견한 것과 비슷하다”고 짚었다. ■ 오래 기다렸다, ‘김정은식 개혁·개방 3종 세트’ 일찍이 김 위원장은 2013년 3월31일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경제개발구’ 설치를 결정했다. 하지만 이 결정은 같은 날 함께 채택한 ‘경제·핵 건설 병진노선’의 충격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다. 김 위원장은 2016년 7차 당대회 땐 “대외경제관계 확대·발전”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경제개발구를 꾸준히 늘려왔다. 북에는 지금 경제특구 5곳, 경제개발구 22곳이 있다. ‘김정은식 대외 개방’의 핵심 거점이다. 특히 지난해 12월엔 ‘혁명의 수도’로 불리는 평양 외곽 강남군에 경제개발구를 세우겠다고 밝혔는데, 북한 분석에 정통한 전직 고위 관계자는 “김정은 위원장이 대외 개방과 관련해 모종의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는 방증”이라고 짚었다. 김 위원장은 2014년 5월30일 ‘당·국가·군대 기관 책임일군(일꾼)’을 앞에 두고 “우리 식 경제관리 방법”(5·30담화)을 제시했다. ‘경제 분야에 자율성, 물질적 인센티브제도 적극 도입’이 핵심인데, 농업 분야에서 ‘포전담당책임제’(정부가 제공한 농자재 비용과 국가 몫을 납부한 뒤 초과 생산물을 국가, 농민 사이에 일정 비율로 현물 분배), 국영기업 분야에서 ‘사회주의 기업 책임 관리제’(기업에 생산량, 상품 품질, 가격·임금 및 인력 규모 결정 등 일부 권한을 주고 초과 생산품의 시장 판매 허용), 상업 분야에서 상업기관의 운영 자율권 확대(직거래, 현금 사용, 수요·공급에 따른 상품 가격 조절 권한 부여)로 실행된다. 북한 경제 분석의 권위자인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우리 식 경제관리 방법’은 김정은 시대 개혁 조처의 핵심”이라며 “(북한의 경제 개혁은) 국영기업 등이 스스로 시장경제 활동을 하도록 허용해주는 것”이라고 짚었다. 양 교수는 “다만 ‘우리 식 사회주의’라는 식으로 개혁적인 냄새를 풍기지 않으려 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2016년 7차 당대회에서 ‘경제개발구’와 ‘우리 식 경제관리 방법’을 강조하며, 집권 뒤 처음으로 중기경제계획인 ‘5개년 전략’(2016~2020년)을 제시했다. ■ 개혁·개방 위한 안보 환경 개선 노력 2012년 집권 이후 ‘은둔의 지도자’로 불리던 김 위원장이 2018년 들어 전광석화와 같은 ‘정상회담을 통한 정세 돌파’에 나서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김 위원장의 이런 광폭 행보는 “현 시기 우리 당과 국가가 총력을 집중해야 할 기본전선”이라 규정한 “경제강국 건설”(7차 당대회 사업총화 보고)에 필수인 개혁·개방을 안정적으로 펼치기 위한 안보 환경 개선을 목표로 한다는 게 정부와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는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개혁·개방으로 경제를 일으켜 세워 패권국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수준에 이른 중국의 선례와 비교해보면 그 맥락을 좀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중국 개혁·개방의 설계자’로 불리는 덩샤오핑은 1978년 12월 공산당 11기 3중전회에서 ‘4대 현대화 노선’을 채택해 ‘중국식 개혁·개방’을 안팎에 천명했다. 다만 이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방중을 전기로 한 사실상의 미-중 관계정상화와 이를 통한 대소련 안보 균형 전략의 성공을 핵심 기반으로 했다. 1979년 미-중 국교 수립은 이미 달라진 현실을 제도적으로 추인한 행위에 가까웠다. 중국은 미-중 수교 이듬해인 1980년 국제통화기금(IMF)에 가입했지만, 국제경제질서의 명실상부한 구성원이 됐음을 뜻하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2001년에야 성취했다. 안보 환경의 개선 없이는 개혁·개방도, 국제경제질서 편입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중국식 사회주의 경제 노선 전환과 국교 정상화, 국제기구 가입은 중국의 개혁·개방 ‘3종 세트’라고 할 수 있다”며 “북한의 4·20 전원회의 결과를 개혁·개방 선언이라고 본다.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가는 길이 중국과 상당히 비슷하다”고 짚었다. 베트남도 안보 환경을 안정시킨 뒤에야 개혁개방 정책이 실효를 거둘 수 있었다. 베트남은 1986년 6차 공산당대회에서 ‘쇄신’이라는 뜻의 ‘도이머이’(??i m?i) 정책을 채택했다. 하지만 ‘도이머이’가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며 성과를 거둔 때는 전쟁을 치른 ‘적국’인 중국(1991년), 미국(1995년)과 국교를 맺어 안보 환경을 안정화한 이후다. 베트남은 2007년에야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했다. 구갑우 교수는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가 개혁·개방을 하려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가 필수라고 짚었다. 구 교수는 “미국과 관계 정상화가 되지 않으면 정상적인 국제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렵다”며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경제특구·개발구에서 외국 자본 유치를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국제 경제 영역에서 패권을 쥐고 있는 나라(곧 미국)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 집중’을 선언한 김정은 위원장한테 6월12일로 예정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관건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노지원 이제훈 기자 zone@hani.co.kr [관련 영상] 한겨레TV | 이구동성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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