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5·26 정상회담엔 회담 결과를 문서로 정리한 합의문이 없다. 4월27일 정상회담 때 ‘판문점 선언’을 발표한 선례와 비교된다. 더구나 이번 회담은 남과 북이 회담 결과를 각자 발표했고, 발표 시점에 시차가 있었다. 발표 형식도 달랐다. 왜 그랬을까?
이번 회담의 핵심 목적이 ‘북-미 정상회담 구하기’라는 점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많다. 아울러 전격적인 회담 성사, 4·27 정상회담을 계기로 쌓인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신뢰 관계’가 두루 작용한 듯하다.
‘합의문 발표 없는 정상회담’은, 이번 회담이 ‘북-미 정상회담 구하기’를 염두에 둔 남북 정상의 ‘전격전’이라는 사실과 직결돼 있다. 더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라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또 다른 행위자의 존재를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5분50초 동안 이어진 문 대통령의 27일 정상회담 결과 발표에는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단어가 4차례, ‘트럼프 대통령’이 3차례, ‘비핵화’가 4차례 등장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22일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비핵화 때 적대관계 종식과 경제적 번영 지원)을 전하고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한 제언(실무협상 통한 충분한 사전 대화)을 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방법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이미 여러차례 설명했고, 폼페이오 장관도 방북해 김 위원장을 만나 직접 확인했다”며 “(비핵화) 로드맵은 북-미 간 협의할 문제이기 때문에 앞질러서 내 생각을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잘랐다. 문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의 ‘길잡이’ 노릇을 자임하고 있지만, 북-미 정상을 앞세우는 절제된 태도를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교착 국면이긴 하지만, 두 정상이 전격적인 정상회담을 할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며 이미 합의·발표한 ‘4·27 판문점 선언’에 덧붙일 게 당장은 많지 않다는 점도 작용한 듯하다. 실제 회담 뒤 발표를 보면, 판문점 선언의 “조속한 이행” 재확인과 함께 고위급회담(6월1일)·장성급회담·적십자회담을 연이어 열기로 했다는 정도다.
무엇보다 남북 정상의 ‘높은 상호 신뢰 관계’가 밑돌이 된 듯하다. 문 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이루어졌다”고 표현했다. 김 위원장은 “조미수뇌회담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문 대통령의 노고에 사의를 표했다”고 <노동신문>이 전했다.
전직 고위관계자는 “남북 정상이 높은 신뢰관계를 토대로 북-미 정상회담을 살리려고 만난 건데 무슨 합의문이 필요하겠냐”며 “합의문을 만들려고 하면 이렇게 필요한 적기에 전격적으로 정상회담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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