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협상팀이 묵고 있는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은 예약이나 용무가 없는 이들의 출입을 아예 차단하고 있다. 싱가포르/박병수 기자
역사적인 6·12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양국 협상팀의 실무협상이 1일 싱가포르에서 나흘째 계속됐다. 삼엄한 경비 속에 움직이는 협상팀과 취재진의 숨바꼭질도 긴박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날 오후 북한 협상 대표단의 숙소인 풀러턴 호텔의 지하주차장, 아침부터 시동만 건 채 움직이지 않고 있던 대표단 차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북한쪽 협상 대표인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이 타고 있는 모습이 목격되면서 취재진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한국과 일본 등의 취재진은 며칠째 이곳에서 진을 치다시피하며 북한 대표단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이날 아침에도 북한 대표단으로 보이는 이들이 몇몇 호텔 식당에 내려와 식사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하지만 호텔 쪽은 북한 대표단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안내 데스크의 한 직원은 이날 ‘북한 인사들이 지금 호텔에 있느냐, 아니면 나갔느냐”고 묻자 “북한 대표단은 우리 호텔에 묵고 있지 않다”며 숙박 사실조차 부인했다.
조지프 헤이긴 백악관 부실장 등 미국 협상 대표팀이 묶고 있는 카펠라 호텔은 투숙객 등을 제외하곤 일체 출입을 통제했다. 호텔쪽 경비인력은 호텔 진입로 앞에서 드나드는 차량을 일일이 세우고 방문 목적을 확인했다. 한 경비인력은 “투숙객이거나 호텔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다는 걸 입증할 문서 같은 게 없는 한 더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왜 출입을 통제하는냐’는 질문엔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사적인 행사가 있는 것으로 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호텔 주변의 취재진 사이에선 “북-미간 실무 협상이 (안에서)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미국 협상팀이 묵고 있는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은 예약이나 용무가 없는 이들의 출입을 아예 차단하고 있다. 싱가포르/박병수 기자
북-미 정상회담의 장소로는 카펠라 호텔과 샹그릴라 호텔 등이 유력한 후보지로 꼽히고 있다. 현재 미국 대표팀의 숙소인 카펠라 호텔은 센토사섬에 자리잡고 있다. 센토사섬은 싱가포르 앞바다에 있는 섬이다. 싱가포르와 연결된 다리 하나만 차단하면 출입을 통제할 수 있어 경호 측면에서 이점이 있다. 그러나 센토사섬은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골프장, 대형 쇼핑몰 등이 몰려 있는 휴양 관광지이기도 하다. 한 주민은 “북-미 정상회담을 이유로 휴양지인 섬의 출입을 통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샹그릴라 호텔은 2015년 1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당시 대만 총통의 양안 정상회담이 열렸던 곳이다. 1일부터는 사흘 일정으로 아·태지역 다자 안보·국방 협의체인 ‘샹그릴라 대화’(아시아안보회의)가 열리고 있다. 국제행사 경험이 많고, 시내 중심가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비교적 한적해 경호와 안전에도 큰 문제가 없다. 싱가포르 유력지인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31일 “샹그릴라 호텔이 북-미 정상회담 개최 장소가 될 가능성이 있지만, 북한 쪽은 풀러턴 호텔에, 미국 쪽은 카펠라 호텔에 머물면서 둘 중 한 곳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점쳤다. 대통령궁(이스타냐)도 후보지로 거론된다. 지난해 9월 첫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한 할리마 야콥 대통령의 집무실로 쓰이고 있는 대통령궁은 중심가인 오차드 거리에 있지만 경호에 유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현지 주민들의 반응은 비교적 차분한 편이라고 한다. 싱가포르에서 20년을 살았다는 한 교민은 “현지 언론들은 북-미간 현재 이뤄지는 의전·경호 협상 등에 대해 사실 위주로 보도한다. 현지인들도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사실 자체는 알고들 있다. 대체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