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균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1일 오전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에 참석해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남과 북은 1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고위급회담을 열어 이른 시일 안에 개성공업지역(개성공단)에 당국자가 상주하는 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하기로 하고, 장성급 군사·체육·적십자회담의 6월 중 개최 일정을 확정했다. 남북은 임박한 6·15 공동선언 18돌을 “의의 있게 기념하는 방안들을 모색”해 ‘문서 협의’ 하되, 공동행사는 치르지 않기로 뜻을 모았다.
회담은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5시42분에 끝났다. 속전속결이다. 공감의 폭이 큰 사안은 바로 합의하고, 이견이 있거나 추가 검토가 필요한 사안은 말싸움 대신 ‘문서 협의’를 더 하기로 했다. 의견이 같은 건 우선 취하고 의견이 다른 대목은 뒤로 미루는 ‘구동존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한달 새 두차례 정상회담이 낳은 새로운 회담 문화다. 남북 합의 사항의 이행 전망을 밝게 한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모두 3개조 6개항으로 이뤄진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고위급회담 공동보도문’을 채택·발표했다. 가장 눈에 띄는 합의는 ‘4·27 판문점 선언’ 이행을 포함해 앞으로 남북 당국의 상설 협의 창구 구실을 할 “당국자가 상주하는 공동연락사무소를 가까운 시일 안에 개성공업지구에 설치하기로 하고, 실무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는 발표다. 조 장관의 설명과 정부 자료를 보면, 남북은 15일 이전에 남쪽 점검단이 개성을 방문해 시설을 점검한 뒤 개보수 공사 시작과 함께 ‘임시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운영하기로 했다. 남북은 공동연락사무소의 임무를 ‘당국 간 긴밀한 협의와 교류·협력의 원만한 보장’이라고 적시했다.
남북은 이날 회담에서 판문점 선언 이행의 손과 발 노릇을 할 분야별 회담 개최의 얼개도 짰다. 판문점 선언에 “5월 중” 개최를 명시했으나 미뤄진 장성급 군사회담을 14일 판문점 북쪽 통일각에서 가장 먼저 열기로 했다. “남북 사이 군사적 긴장 완화와 국방장관회담 개최 문제 등 협의”가 의제다. 나흘 뒤인 18일엔 판문점 남쪽 평화의집에서 체육회담을 연다.
체육분야 교류협력과 관련해 공동보도문에 적시된 의제는 “남북통일 농구경기”와 “2018년 아시아경기대회 공동진출”, 두 가지다. 뒤쪽이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내용이라면, 앞쪽은 김정은 위원장의 ‘각별한 관심 사항’이다. 4·27 정상회담 때, 농구광으로 알려진 김 위원장이 “경평(서울-평양) 축구보다 농구부터 하자”고 제안했다고 문 대통령이 4월30일 대통령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밝힌 바 있다. 개최 날짜와 장소를 ‘문서 협의’ 하기로 한 “가을 북쪽 예술단의 남쪽 지역 공연을 위한 실무회담”도 김 위원장의 관심 사항이다. 김 위원장은 4월1일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쪽 예술단의 ‘봄이 온다’ 공연을 보고 “문 대통령한테 말 잘해서, 이번에 ‘봄이 온다’고 했으니까 이 여세를 몰아서 가을엔 ‘가을이 왔다’라는 공연을 서울에서 하자”고 말한 바 있다.
적십자회담은 22일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상징적 장소인 금강산에서 열기로 했다. 판문점 선언엔 “8·15 계기 이산가족·친척 상봉 진행”이 명시돼 있다.
경제협력과 관련해선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의식해서인지 우선 협의 과제를 추리는 수준에서 멈췄다. “동해선·경의선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 문제” 협의를 위한 ‘남북 철도 및 도로 협력 분과회의’, ‘산림협력 분과회의’의 개최 날짜·장소를 “문서 교환 통해 확정”하기로 했다. 조 장관은 “6월말께 서로 형편을 봐서 일자를 정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예상과 다른 회담 결과는 크게 봐서 두가지다. 하나는 6·15 남북공동행사를 치르지 않기로 뜻을 모은 사실이다. 조 장관은 회담 뒤 “6·15 전후해서 남이나 북이나 여러 일정이 있다”고 운을 뗀 뒤, “최종 합의는 아니지만 6·15 남북공동행사는 개최하지 않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북쪽은 북-미 정상회담(6월12일 싱가포르 예정), 남쪽은 6·13 지방선거로 6·15 공동행사 진행에 집중하기 어려운 사정을 고려한 ‘조정’으로 풀이된다.
다른 하나는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 국적자 6명의 문제와 관련해 조 장관이 “관련 기관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북쪽이 설명해왔다”고 남쪽 공동취재단한테 밝힌 대목이다. 북쪽이 ‘북송’을 공개적으로 촉구해온 ‘중국 북한식당(류경식당) 여종업원’ 문제와 관련해선 “여종업원 문제와 억류자 문제는 별개”라며 “북쪽이 여종업원 문제는 오늘 얘기하지 않았다고 보시면 될 것”이라고 조 장관은 덧붙였다. 이 두 문제는 22일 금강산 적십자회담 때 “인도적 문제 협의” 차원에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제훈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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