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수행원들이 10일 오후 싱가포르 세인트 리지스 호텔 입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경호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싱가포르/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10일 오후 2시35분(현지시각)께 싱가포르 창이공항. 중국 고위급 인사들이 이용하는 에어차이나(중국국제항공) 보잉 747기를 타고 4700㎞에 이르는 평양~싱가포르 구간을 7시간 동안 날아온 김정은 위원장 일행이 싱가포르 땅에 내렸다. 인민복 차림에 뿔테 안경을 쓴 김 위원장은 비행기 트랩을 내려와 활짝 웃으며 비비안 발라크리슈난 싱가포르 외무장관의 영접을 받았다.
브이아이피(VIP) 통로로 공항을 빠져나온 김 위원장 일행은 평양에서 공수해 온 전용차량인 검은색 벤츠 리무진을 타고 오후 3시3분께 공항을 빠져나와 35분 만에 숙소인 세인트 리지스 호텔에 도착했다. 김 위원장이 공항에서 숙소까지 20여㎞를 이동하는 동안 싱가포르 정부는 김 위원장 차량 앞뒤로 사이드카 등 35대의 호위차량을 붙이고 교통 통제를 하는 등 극진하게 예우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도착하기 전인 오후 2시50분께부터 세인트 리지스 호텔 주변에는 검은 양복을 입고 왼쪽 가슴에 빨간 배지를 단 북한 경호원들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분주히 움직였다. 취재진은 물론 수백명의 시민까지 몰려나왔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영상통화로 지인에게 현장 상황을 알리며, ‘역사의 현장’에 와 있다는 사실에 들뜬 모습이었다. 수많은 인파가 몰렸는데도 30여분 동안 다들 한곳을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싱가포르 정부가 김 위원장이 이동하는 동안 창이공항에서부터 호텔까지 교통을 통제하면서 차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권총과 소총으로 무장한 경찰은 시종일관 긴장된 표정으로 김 위원장을 태운 차량이 들어오는 방향을 바라보며 대기했다.
오후 3시38분, 김 위원장을 태운 리무진이 마침내 호텔 정문 앞에 들어서자 경호원들이 천천히 움직이는 차량을 에워싸고 달리기 시작했다.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봤던 철통 경호의 모습이 다시 연출됐다. 다만 김 위원장이 차에서 내리는 모습은 호텔 쪽이 보안을 위해 미리 정문 입구 천장에 설치해 둔 회색 가림막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3시간 가까이 호텔에서 머물다 오후 6시30분께 대통령궁에서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만났고 50분 뒤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5성급 호텔 세인트 리지스 꼭대기 20층에는 침실과 응접실, 식당, 사무실, 테라스, 운동 시설이 있는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이 있는데 김 위원장은 이곳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이 호텔에는 이날 오전 8시30분부터 취재진이 몰렸다. 어두운 감색 제복 차림에 허리에 권총을 차고 일부는 긴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경찰들도 곳곳에 배치됐다.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카메라와 이를 감시하는 삼엄한 경비와 보안, 검색은 ‘몇 시간 뒤면 아주 특별한 손님이 온다’고 예고하는 듯했다. 무장 경찰은 호텔을 에워쌌고, 호텔 정문 근처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됐다. 경찰은 호텔로 접근하려는 택시 등을 다른 길로 돌려보냈고, 투숙객도 신분 확인을 거친 뒤에야 로비로 들어갈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도착하기 직전인 오후 9시께 샹그릴라 호텔 앞에 몰려든 취재진과 시민들. 싱가포르/노지원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숙소인 샹그릴라 호텔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호텔 안으로 진입하는 차량에 대한 검문검색이 진행됐지만 북쪽 숙소만큼 엄격하게 통제하지는 않았다. 이날 밤 8시50분께 트럼프 대통령은 브이아이피용 비밀통로를 통해 눈에 띄지 않은 채 숙소로 올라갔다. 트럼프 대통령의 도착이 임박하자 호텔 입구에는 그를 보려는 시민들이 몰려들었지만, 아무도 그를 보지 못했다. 뒤늦게 경호요원들이 “이미 그가 숙소에 도착했다. 통로가 어디인지는 경호상 알려줄 수 없다”고 알리면서 기다림은 허무하게 끝났다. 세인트 리지스 호텔과 샹그릴라 호텔은 직선거리로 단 570m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있다. 천천히 걸어도 10분이면 닿는다.
싱가포르/노지원 황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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