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싱가포르 카펠라호텔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있다. 싱가포르/로이터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전쟁포로 및 실종자 유해 송환에 합의함에 따라, 북한 땅에 묻힌 미군 유해 발굴 작업이 2005년 이후 13년 만에 재개될 전망이 높아졌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유해 발굴 사업의 “남·북·미 공동 추진을 북한과 협의하겠다”고 밝혀, 6·25 전사자 유해 발굴이 3국간 공동 사업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커졌다.
미국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와 실종자 담당국’은 언제든지 북한에 들어가 발굴 작업을 재개할 준비가 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최근 대략 6개월에서 9개월이면 북한 내 장비 반입을 끝내고 유해 발굴 작업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도한 바 있다.
미군 유해 발굴 및 송환 재개가 이번 정상회담 의제로 거론될 것이란 전망은 회담 전부터 나왔다. 이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무관할 뿐 아니라 북-미 간 관계 개선에 쉽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도주의 사업이다. 또 두 정상이 합의만 하면 언제든 재개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전사자 유해 문제가 중요한 이슈인데 처음부터 회담 의제에 들어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줬다. 거의 회담 마지막쯤에 우리가 이 문제를 다뤘는데 포함이 됐다”고 협의 과정을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유해 발굴 사업에 동참할 뜻을 밝혔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이날 북-미 정상회담 뒤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남북 사이에도 유해 발굴 사업이 합의가 된 상태이기 때문에 남·북·미가 함께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을 북한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남북은 2007년 11월 김장수 당시 국방부 장관과 김일철 인민무력상 간의 제2차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 유해발굴 사업에 합의한 적이 있으나 이행되진 않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비무장지대에서 유해 발굴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6·25 이후 65년 동안 북한에서 송환된 남한군의 유해는 없었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미군의 경우는 6·25전쟁 기간에 7900여명이 실종됐고, 이 중 약 5500명이 북한에 유해로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미군 유해는 452구라고 <자유아시아방송>이 최근 보도했다.
애초 미군 전사자의 유해 발굴 사업은 1988년 12월 중국 베이징에서 이뤄진 북-미 참사관 접촉에서 시작됐다. 북-미는 이후 30여차례의 협상을 거쳐 1993년 8월 ‘미군 유해 송환 등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했으며, 1996년부터는 함남 장진호와 평북 운산 등에서 양국 공동으로 미군 유해 발굴 작업이 진행됐다. 그러나 2005년 5월 북한의 6자회담 참여 거부 등으로 북-미 관계가 악화되자 미국은 북한 내 미군 유해발굴팀을 신변 안전을 이유로 철수시켰다. 양국은 2011년 10월 타이 방콕에서 미군 유해 발굴 작업의 재개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듬해 4월 북한이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위성 발사를 강행하면서 이행되지 않았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