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시진핑 주석과 악수하는 박봉주 내각총리. 중국중앙텔레비전 갈무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3차 중국 방문 수행원엔 주목할만한 변화가 있다. 북한 경제를 총괄하는 박봉주(79) 내각 총리다. 박 총리는 김 위원장의 1차(3월25~28일, 베이징)와 2차(5월7~8일, 다롄) 방중은 수행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앞서 1·2차 방중 땐 경제 관련 고위 참모를 아무도 데려가지 않았다. 북-중 관계에 밝은 전직 고위관계자는 20일 “김 위원장이 박봉주 총리를 수행단에 처음 포함시키는 행위를 통해 북·중 경제협력 의지를 안팎에 드러낸 셈”이라고 짚었다.
앞서 김 위원장은 4·20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7기3차)에서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것이 우리 당의 전략적 노선”이라며 “당의 경제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내각의 통일적인 지휘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지침’을 밝힌 바 있다.
실제 박 총리는 올해 들어 <조선중앙통신>에 보도된 ‘현지 료해(파악)’ 동정 횟수만 16차례에 이를 정도로 분주하게 경제 현장을 챙기고 있다.(김정은 위원장 현지지도 수행은 제외) 화학·금속 공업 분야부터 김 위원장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현장까지 매달 최소 1차례에서 최대 4차례 직접 경제 현장을 둘러보고 점검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방중 당일인 19일치 <노동신문> 3면에도, 박 총리가 “낙원기계연합기업소·봉화화학공장·정주닭연구분소를 비롯한 (평안북도의) 여러 단위를 돌아보고 생산적 앙양과 비약을 일으킬 데 대해 언급했다”는 소식이 실렸다.
박 총리가 맡고 있는 직책은 내각 총리를 비롯해 모두 세 가지다. 그는 북한 노동당의 최고 정책 결정 기관인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의 상무위원이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바로 아래인 부위원장 3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 또한 경제를 비롯해 국가를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내각 총리를 맡고 있다. 국방 분야를 뺀 나머지 행정, 경제 관련 사업을 관할한다.
박 총리는 함경북도 김책시 출신으로 덕천공업대학을 졸업한 뒤 20대 초반이던 1962년 평안북도 용천식료공장 지배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8년 만인 1980년 당 중앙위 후보위원에 올랐고, 1993년 당 경공업부 부부장, 1998년 화학공업상 겸 최고인민회의 10기 대의원이 됐다. 2002년 김일성 훈장까지 받았고, 이듬해 내각 총리 자리에 올랐다.
5년 뒤인 2007년 내각 총리에서 해임되면서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지배인 자리로 좌천했지만, 2010년 당 중앙위 제1부부장에 올랐다. 2013년 6년 만에 내각 총리 자리에 복귀한 뒤 현재까지 총리직을 맡고 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장 부위원장이 모든 직무에서 해임되고 출당, 제명 조치됐던 2013년 12월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눈물까지 흘리며 그를 비판해 화제가 됐다.
김 위원장의 3차 방중엔 박태성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노광철 인민무력상도 처음으로 수행원에 포함됐다. 박 부위원장은, 김 위원장의 2차 방중 직후인 5월16일 ‘방중 친선관람단’의 단장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예방해 “중국의 경제 건설과 개혁개방의 경험을 학습하러 왔다”고 말했다고 중국 <중앙텔레비전>(CCTV)에 보도된 인물이다. 노광철 인민무력상은 북한의 국책사업이라 할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을 책임진 조선인민군을 이끌고 있다. 박봉주·박태성·노광철 3인 모두 ‘경제’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7120자에 이르는 <노동신문>의 김 위원장의 3차 방중 관련 보도문엔 ‘경제’라는 단어가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의도적 회피에 가깝다. 시진핑 주석이 김 위원장과 회담에서 “조선이 업무 중심을 경제 건설로 돌린다는 중대한 결정을 내린 것을 기쁘게 보았다”며 “조선 경제의 발전과 민생의 개선을 지지한다”고 밝혔다는 중국 시시티브이 보도와 대비된다. 한반도 정세 흐름에 밝은 전직 고위관계자는 “중국이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에 구멍을 내지 않을까 우려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한테 트집을 잡히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제훈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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