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 5구가 1998년 10월 판문점에서 유엔사 장병들에게 넘겨지고 있다. 이정우 <한겨레21> 기자
북한과 미국이 12일 오전 판문점에서 한국전 당시 전사한 미군 유해 송환을 위한 실무협의를 연다.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 꼭 한 달 만에 북-미 정상이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주한미군 관계자는 이날 “(오늘 판문점에서) 유해 송환을 언제 할 것이며 어떤 절차에 따라 할지를 미국 정부와 미 국방부, 북한군이 만나 실무협의를 하는 자리”라면서 “(협의는) 오전 중에 열린다”고 말했다. 협의 장소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 T3(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로 알려졌다. 앞서 미 국방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미국 쪽에서는 유엔군 사령부(유엔사) 관계자가 북쪽과 협의에 나선다. 주한미군은 이미 지난달 유해 송환에 쓰일 나무 상자 100여개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으로 이송하고, 유해를 미국으로 보낼 때 필요한 금속관 158개를 경기도 오산 공군비행장에 마련해뒀다고 밝혔다. 다만 주한미군 쪽은 이날 실무협의 결과로 유해 송환 가능성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한 관계자는 “(유해 송환을 위한) 나무 상자들은 지난번에 판문점에 보낸 상태 그대로 있다”면서 현재 나무 상자들은 창고에 보관 중이라고 전했다.
이날 실무협의는 지난 6~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의 방북 당시 합의로 열렸다. 폼페이오 장관은 7일 기자들에게 “유해 송환 책임자들 간 논의가 국경에서 열릴 것이며 그 프로세스는 이후 진전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혀, 이날 실무협의가 유해 송환 문제를 구체화하는 첫 자리임을 시사했다.
<로이터> 통신이 11일 보도한 켈리 매키그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 국장의 인터뷰의 맥락도 비슷하다. 매키그 국장은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군 유해 송환과 관련해 “그 약속 관련 구체적 (진전) 사항을 아직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12일 협의가 이후 북한과 직접적인 협의·협상으로 이어져 우리가 실제로 구체적인 계획을 짤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매키그 국장은 “(유해를 돌려받아도) 신원 확인까지는 수개월에서 많은 경우 몇 년이 걸린다”며 이 작업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미군 유해 송환은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이다. 북-미 정상이 서명한 공동성명 4항은 “미국과 북한은 신원이 이미 확인된 전쟁포로, 전쟁실종자들의 유해를 즉각 송환하는 것을 포함해 전쟁포로, 전쟁실종자들의 유해 수습을 약속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날 판문점 협의는 북-미가 한 달 만에 공동성명 이행 절차에 나선다는 의미 외에도 이후 비핵화 등 전반에 대한 협의를 전제로 열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앞서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당시에는 북-미 모두 이후 협상을 둘러싼 각자의 주장을 확인하는 선에서 논의가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관계에 밝은 외교 소식통은 “이번 협의에선 북쪽이 전체 협상판을 어떻게 이끌까 생각하면서 제안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 북한의 태도를 보고 나서 미국도 판단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폼페이오 장관 방북 이후 ‘빈손 방북’이라는 등 미국 내 비판적 여론이 거센 점도 감안해 북쪽이 이날 협의에 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유해 송환 실무협의에서 비용 문제도 주요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앞서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 대변인실이 “미국 정부는 정책상 어떤 정부나 개인에게 실종된 미국인의 유해에 대한 대가로 돈을 지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인 유해를 발굴하고 송환하는 절차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변상할 권한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고 <미국의소리>(VOA)방송이 10일 보도했다. 미국 쪽이 실비 정산 수준의 비용을 지급할 수는 있다고 해석되는 가운데, 북쪽에서 이와 관련해 어떤 입장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은 전날 <미국의소리>에 1990년부터 2005년까지 북한한테서 약 629구로 추정되는 유해를 돌려받았으며,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334구라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 7697명이 실종됐으며 이 가운데 북한 땅에서 전사한 유해가 5300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번에 유해 송환이 이뤄질 경우 2007년 이후 11년 만이 된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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