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을 연결하는 판문점 직통전화가 다시 열렸다. 2013년 북한이 ‘정전협정 무효화’를 선언한 뒤 끊긴 북-미 사이 판문점 연락 채널이 복구된 셈이다. 판문점이 남북뿐 아니라 북-미를 잇는 대화의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반도 정세 흐름에 밝은 복수의 외교 소식통의 말을 종합하면, 북한 쪽은 12일 오전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를) 유엔사령부와 직접 연결하는 전화를 다시 연결하고자 한다. 이를 유엔사에 전달하고 기술적 준비를 해주면 좋겠다’라는 취지의 요청 사항을 남북 직통전화를 통해 전해왔다.
판문점 남쪽 유엔사 일직 장교 사무실과 북쪽 통일각 사이를 잇는 ‘북-유엔사 직통전화’는 2013년 북한이 정전협정 무효화를 선언하며 끊겼다. 다만 물리적인 전화선이 끊어진 게 아니라 북쪽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받지 않아 사실상 단절 상태였다. 유엔군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이 겸하고 있어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유엔사령부 직통전화’는 실제론 ‘북-미 군 직통전화’다.
북쪽은 이 직통전화가 연결되자 유엔사 쪽과 ‘준비 부족 탓에 유해 송환 협의에 바로 참가하기 어렵다. 회담의 격을 높여 장성급 군사회담을 15일에 열자고 제안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통화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애초 유엔사(사실은 미국 정부) 대표단은 12일 아침부터 유해 송환 실무협의를 위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에서 북쪽 대표단을 기다렸지만, 북쪽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이게 ‘협의 거부’는 아니라는 얘기다. 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12일(현지시각) "오늘 낮에 그들(북한)이 연락해서 일요일(15일)에 만나자고 제안했다"며 "우리는 (회담) 준비가 돼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6∼7일 평양 백화원영빈관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만난 뒤 “하루나 이틀 날짜가 바뀔 수 있지만, 12일 판문점에서 (북-미) 유해 송환 담당자들 간 회담을 열기로 했다. 회담은 며칠 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북한 쪽이 ‘남북 직통 연락 창구’를 활용해 판문점 북-미 직통전화를 복구하고, 북쪽의 ‘15일 판문점 장성급 군사회담’ 제안을 미국 정부가 받아들여, 최근 고개를 들던 ’북-미 협상 이상기류’ 논란은 다시 잦아들 전망이다.
지난 3일 오후 3시34분께 경기 파주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안 남쪽 자유의집에 설치된 ‘남북직통전화’로 우리 쪽 연락관이 북쪽과 통화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애초 실무 선에서 치르기로 한 유해송환 협상이 장성급으로 그 격이 높아져 애초의 유해송환 관련 실무 협의 외에도 ‘+@(플러스 알파)’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수 있게 판이 짜였다. 예컨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유엔사와 북한군 사이 군사적 긴장 완화 문제 등이 깊이 있게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사실상 북한이 정전체제를 인정하지 않으며 유엔군과도 전혀 소통하지 않았는데 다시 정상적인 대화 채널이 생긴 셈”이라며 “공동경비구역에서의 무장해제 등 다양한 주제로 협의할 수 있다”고 짚었다.
판문점 남쪽 유엔사 일직 장교 사무실과 북쪽 통일각 사이를 잇는 이 직통전화는 2013년 북한이 정전협정 무효화를 선언하며 끊겼다. 다만 물리적인 전화선이 끊어진 게 아니라 북쪽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받지 않아 사실상 단절 상태였다. 이때부터 최근까지 유엔사 쪽에서 북쪽에 전달할 내용이 있으면 군사분계선 앞에 나가 손확성기로 외치는 방식으로 메시지 전달이 이뤄졌다.
이번에 북한 쪽의 제안으로 ‘북-유엔사(미) 군 직통전화’ 창구가 복원돼 판문점이라는 공간이 북-미를 잇는 또 하나는 연락채널로 다시 떠올랐다. 각종 대북제재가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북쪽 관계자가 미국에 가거나, 미국 관계자가 북한을 자유롭게 드나들기 쉽지 않은 상태에서 일종의 ‘중간지대’인 판문점은 양쪽 모두 쉽게 만날 수 있는 장소다. 판문점 북-미 연락채널이 재개된 만큼, 언제든 전화를 걸어 약속을 한 뒤 접촉을 할 수도 있다.
노지원 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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