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조사위, 마린온 추락 원인 규명 본격화
진동저감장치 이상일 가능성 있어
진동문제로 정비 뒤 비행하다 추락
회전날개 지지축 파괴 가능성도
진동저감장치 이상일 가능성 있어
진동문제로 정비 뒤 비행하다 추락
회전날개 지지축 파괴 가능성도
상륙기동헬기 ‘마린온’이 이륙 직후 ‘회전날개’(로터·프로펠러)가 떨어져나가면서 추락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해병대 사고조사위원회가 정비불량이나 기체결함 가능성 쪽에 혐의를 더 무겁게 두고 사고원인 규명에 본격 나선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마린온 헬기가 17일 추락할 때 회전날개가 떨어져 나간 현상과 관련해선 헬기의 핵심장치인 ‘기어박스(’gear box)나 그 안에 장착된 ‘진동저감장치’(epicycle module bearing)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지적된다. 기어박스는 엔진의 동력을 회전날개에 전달하는 장치이다. 엔진의 동력은 기어박스를 거쳐 회전날개에 전달된다. 진동저감장치는 기어박스 안에 설치돼 회전날개의 진동과 소음이 헬기 동체에 그대로 전달되지 못하도록 제어하는 장치이다. 회전날개가 돌아갈 때는 엄청난 진동과 소음을 발생한다. 진동저감장치가 없으면 회전날개의 진동을 제어할 수 없게 돼 동체가 회전날개의 진동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이번에 마린온 헬기의 추락 과정을 보면, 마린온이 이륙하자 마자 이 기어박스나 그 안의 진동저감장치 고장으로 진동이 커지면서 회전날개가 떨어져나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헬기에 대해 잘 아는 군 당국자는 “헬기의 동력은 엔진→기어박스→회전날개로 전달된다. 기어박스가 보통 2만 알피엠(rpm·분당회전속도)이 넘는 엔진출력을 통상 6600알피엠으로 변속해준다. 기어박스가 제 구실을 못하면 엔진의 과출력이 회전날개에 그대로 전달되면서 과속·과열로 인해 진동이 커지고 회전날개가 절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사고가 난 마린온 헬기는 실제 사고 직전에 진동 제어 문제로 정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자는 “사고 헬기는 비행 중 진동이 심해서 이를 바로잡는 정비를 한 뒤 테스트 비행을 하다 추락했다”고 말했다. 애초부터 헬기의 진동을 제어하는 장치 등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또 당시 정비는 헬기 제작사인 ‘카이’(KAI·한국항공우주산업) 직원이 직접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자는 “사고 헬기는 인도받은 지 6개월밖에 안됐다. 카이에서 파견된 기술진이 상주하며 헬기 운영과 관련한 기술지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6년 6월 노르웨이의 ‘슈퍼 퓨마’ 헬기 추락 사고 때도 비행 중 진동저감장치에 문제가 생겨 기어박스가 파괴되면서 회전날개가 떨어져나간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슈퍼 퓨마는 유럽 항공회사인 ‘에어버스 헬리콥터’(옛 유로콥터)가 제작한 헬기이며, 이번에 사고가 난 마린온 헬기의 원형인 수리온 헬기도 국내 카이(KAI·한국항공우주산업)과 에어버스 헬리콥터가 공동 개발한 것이다. 특히 수리온 헬기는 당시 사고가 난 슈퍼 퓨마가 사용한 진동저감장치(Epicycle module bearing)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다. 카이 관계자는 “2년 전 슈퍼 퓨마 사고 직후 에어버스 헬리콥터의 권고에 따라 진동저감장치 제작사를 교체했고, 이미 출고된 헬기의 진동저감장치도 모두 교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마린온 추락이 회전날개 1엽이 먼저 떨어져나간 뒤 나머지 회전날개 3엽이 통채로 떨어져나간 사실을 들어, 기어박스나 진동저감장치가 아닌 다른 기술적인 문제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어박스나 그 안의 진동저감장치의 문제라면 2년전 노르웨이의 슈퍼 퓨마 헬기의 추락 사고 때처럼 회전날개 4엽이 모두 한꺼번에 통채로 기어박스에서 뽑혀나가는 현상이 나타나지만, 이번 마린온 사고 땐 이런 현상이 없었다는 것이다.
최기영 인하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이번에 사고가 난 마린온 헬기는 회전날개 하나가 먼저 뽑혀나가면서 나머지 회전날개 3엽이 균형을 잃으면서 진동이 커졌고, 그래서 한쪽으로 쏠림 현상이 생기면서 회전날개 지지대가 부러진 것으로 보인다”며 기어박스나 진동저감장치 이상에 의한 사고 가능성을 낮게 봤다. 최 교수는 “회전날개 지지장치는 회전날개의 원심력을 잡아줘야 하기 때문에 헬기에서 강도가 가장 높은 부품에 속한다. 사진을 보면 이 부분이 부러져 떨어져 나가 있다”며 “1차 원인이 노르웨이 사고 때와 같은 기어박스 문제가 아니라 회전날개 지지구조물 파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마린온의 접이식 비행날개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마린온은 육군용 헬기인 수리온을 기본 모델로 일부 성능을 해병대용에 맞게 개조한 것이다. 특히 마리온은 비좁은 함정에 탑재할 수 있도록 회전날개에 접이장치를 부착하고 있다. 수리온 헬기의 회전날개에도 접이장치가 있지만, 마리온은 이보다 더 훨씬 간편하고 빨리 접을 수 있도록 일부 형상을 개조했다고 한다. 수리온 회전날개 한 곳의 접이장치에 문제가 생기면서 이 회전날개가 먼저 떨어져나갔고, 이것이 나머지 3엽이 통채로 떨어져 나가는 참사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헬기 제작사인 카이의 관계자는 “마린온 회전날개의 접이장치를 만들 때 기존의 수리온보다 더 강도가 높고 튼튼한 재료와 부품으로 만들었다. 회전날개 접이장치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노지원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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