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북쪽에 있는 이산가족을 만나는 황우석씨가 생사확인 회보서에서 딸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 통일부 제공
수십년이 흐른 뒤 겨우 가족의 생사확인서를 손에 쥐었다. 전쟁통에 아내와 딸, 부모, 동생들의 손을 놓쳤고, 68년이 흘렀다. 떨리는 마음으로 확인서를 펼쳤지만, 비보다. 아버지, 어머니, 아내는 수십년 전, 여동생 셋은 2∼3년 전 이미 세상을 떴다. 마음이 무너진다. 다만, 영영 이별할 줄 알았던 딸이 살아있다는 소식에 심장이 뛴다.
북녘에 이산가족을 둔 남쪽 주민 황우석(89)씨 이야기다. 그는 다가오는 20일, 딸을 만나러 금강산에 간다. 20∼22일 남쪽 방문단 93명이 북쪽 이산가족을 만나고, 24∼26일에는 북쪽 방문단 88명이 남쪽 이산가족 만난다. 황씨는 이산가족 등록자 5만6000여명 가운데 상봉 대상자로 선정된 93명 중 한명이다. 그는 1985년 처음으로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열렸을 때부터 신청서를 넣었지만, 번번이 상봉 대상자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황씨는 헤어질 때 세 살이었던 딸을 68년 만에 만난다. 그는 1951년 1·4 후퇴 때 세 달만 전란을 피해다니자는 마음으로 고향을 떠났지만, 돌아가지 못했다. 세 살 배기였던 딸은 올해 일흔 한 살이다. 딸에 대한 황씨의 기억은 희미하다. 헤어질 때 딸 아이가 너무 어리기도 했고,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
“아휴, 기억 안 나죠. 이름보고 찾아야지 이번에 가서. 강산이 7번 변했는데….” 황씨는 말했다. “‘지금까지 살아줘서, 살아서 만나게 돼서 감사하다’고 얘기를 해야죠.”
20일 금강산을 찾는 남쪽 방문단 가운데서 황씨처럼 부모 또는 자녀를 만나는 이는 10명(10%)에 불과하다. 형제·자매를 만나는 이가 41명(44%), 3촌 이상을 만나는 이가 42명(45%)이다.
20일 금강산에서 큰 형과 재회할 예정인 이수남씨가 취재진에게 헤어진 가족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통일부 제공
이번에 상봉 대상자에 오른 이수남(77)씨는 20일 북쪽에 있는 큰 형을 만난다. 그는 취재진과 만나 “영광이지만, 이게 마지막이 될 수 있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며 “이산가족이 연세가 있고 우리도 나이를 먹어가니까 마음이 착잡하다. 영구적으로 상설 면회소라도 생긴다면 더없이 좋겠다”고 했다.
20일 금강산에서 여동생과 남동생을 만나는 박기동씨가 동생들에게 줄 선물을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박씨는 겨울 잠바를 비롯해 각종 생활용품을 준비했다. 통일부 제공
같은 날 남동생과 여동생을 만날 예정인 박기동(82)씨는 동생들을 만나면, 살아서 다시 얼굴을 보지 못한 부모님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다. 박씨는 “부모님들이 언제 돌아가셨는가, 제삿날이 언제인가, 묘지는 어디있나 그게 제일 궁금하다”고 했다. 공동취재단,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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