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5일 서울 대한적십자사 본사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후보자 선정 컴퓨터추첨에서 박경서 한적 회장이 평북 철산 출신의 박성은(95)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 할아버지는 추첨 결과 이산가족상봉 대상자로 선정되지 않았다. 한평생을 기다려온 그는 "이제 나는 끝났다"고 말하며 한적건물을 떠났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권석(93)씨는 평생 ‘가슴으로 낳은 아들’을 그리워했다. 나이 열일곱에 만난 남편한테는 먼저 세상을 등진 전처가 낳은 아들이 있었다. 권씨는 자기보다 고작 두살 어린 그이를 제 자식처럼 애지중지했다. 아들도 친엄마처럼 잘 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전쟁이 났다. 영등포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아들이 사라졌다. 이유는 모른다. 그러다 2000년 정상회담 뒤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다녀온 지인이 ‘당신이 말한 그 아들이 평양에 살아 있다더라’라고 전해줬다. 그날 이후 ‘아들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권씨는 20일부터 진행되는 21차 이산가족 상봉에 참여하려 금강산으로 간다. 그런데 남과 북의 적십자사가 확인해 전해준 북쪽 가족 명단에 아들은 없었다. 2005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번엔 아들이 세상에 남긴 두 손자를 만난다. 피는 한방울도 섞이지 않았지만, 권 할머니한테는 꿈에도 그리던 손주들이다. 환갑이 얼마 남지 않은 손자들이 생전의 아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상봉 신청을 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아무 응답이 없어 (아들이) 만날 의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성사가 됐습니다. (아들의) 자식들이라도 만날 수 있게 돼 기대가 큽니다.”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김영자(74)씨도 금강산에 간다. 2002년에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아버지가 북녘에서 낳은 ‘배다른’ 동생(63)을 만난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데도 그리움은 사무친다. 1985년 가을 처음으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렸을 때부터 신청서를 냈지만 여태까지 상봉자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상봉 신청을 빨리 했는데 이날까지 못 만나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를 만나면 ‘아버지!’ 큰 소리로 부르고 싶었는데, 지금은 안 계시네요.” 김씨는 북녘의 동생을 만나 아버지의 흔적을 찾을 것이다.
21차 상봉 행사에 참여하는 남과 북의 가족들은 20∼26일 1·2차에 걸쳐 65년여 동안 떨어져 살던 가족을 금강산에서 만난다. 1차(20∼22일)에는 남쪽 방문단 89명이 북쪽 가족을, 2차(24∼26일)에는 북쪽 방문단 83명이 남쪽 가족을 상봉한다. 애초 1차에는 93명, 2차에 88명이 최종 선정됐지만, 남쪽 가족 9명이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상봉을 포기했다. 이번에 방북하는 남쪽 이산가족은 모두 534명(1차 197명, 2차 337명)이다. 가족 간 만남은 6차례에 걸쳐 모두 11시간 이뤄질 전망이다. 직전 상봉 행사인 2015년 20차 때보다 1시간 늘어났다. 상봉 둘째날 가족들이 객실에서 개별 상봉(2시간)을 한 뒤 곧바로 함께 점심식사(1시간)를 할 수 있게 되면서다. 평생 가족 만날 날을 기다려온 이들한테는 금쪽같은 시간이다.
공동취재단,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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