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쪽 이금섬(92) 할머니가 피난길에서 헤어질 당시 4살이었던 북쪽 아들 리상철(71)씨를 67년 만에 만나 끌어안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엄마는 67년 전 피난길에서 놓친 아들을 와락 끌어안았다. “상철아!” 수십년간 그리워한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
20일 금강산에서 열린 21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이금섬(92)씨는 북쪽에서 온 아들 리상철(71)씨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오열했다. 그는 한국전쟁 때 피난을 가다 남편과 네 살배기 아들의 손을 놓쳤다. “아버지 모습입니다, 어머니.” 상철씨가 생전 아버지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들은 남북처럼 분단된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이 애석한 듯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애들은 몇이나 뒀니?” 구순이 넘은 노모는 평생 가슴에 품어온 궁금증을 속사포처럼 토해냈다. 두 손을 꼭 잡고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야속한 시간은 빛처럼 흘렀다.
행사 첫날인 이날 남쪽 방문단 89가족 197명이 금강산을 찾았다. 100살을 눈앞에 둔 한신자(99)씨는 북녘에 두고 온 두 딸 김경실(72)·경영(71)씨를 만났다. 북에서 온 두 자매는 엄마가 다가오자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하곤 눈물을 터뜨렸다. 말문이 막힌 한씨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나왔다. “아이고….” 전쟁 당시, 한씨는 갓 태어난 막내딸만 둘러업고 피난길에 올랐다. 열다섯, 열네 살 연년생 자매는 고모 집과 친정에 맡겼다. 두세 달이면 돌아올 줄 알았다. 자식을 졸지에 고아로 만들었다고 자책하다 잠 못 이룬 날을 헤아릴 수가 없다. 노환으로 귀가 잘 안 들린 지 10년이 넘었고, 백내장 탓에 눈이 침침하다. 그래도 두 딸의 목소리, 얼굴은 금세 알아봤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첫날인 20일 오후 고성 금강산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남측 함성찬(99) 할아버지가 북측에서 온 동생 함동찬(79) 할아버지를 보고 얼싸안고 기뻐하고 있다. 금강산/사진 공동취재단
김혜자(77)씨는 북쪽에서 온 남동생 김은하(75)씨와 5분 남짓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뒤늦게 울음을 터뜨렸다. “진짜 (내 동생) 맞네!” 해방 이후 김씨는 아버지와 남쪽으로, 어머니는 남동생과 외가에 갔다가 전쟁이 나 영영 헤어지게 됐다. 동생 은하씨가 돌아가신 어머니 사진을 꺼내 보였다. “엄마 맞다, 아이고 아부지!” 김혜자씨는 1983년 <한국방송>(KBS)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을 할 때도 팻말을 들고 나와 가족들을 찾으려 한 적이 있다. “73년 만이다. 해방 때 헤어졌으니. 아이고야, 정말 좋다. 혹시 난 오면서도 아닐까봐 걱정했는데, 진짜네!”
“봇짐 메고 학교 다닐 때” 헤어진 남쪽 김병오(88)씨와 북쪽 여동생 김순옥(81)씨는 전직 교사, 의사가 돼 다시 만났다. “상봉이 결정된 다음부터 날마다 잠을 하나도 못 잤다.” 오빠가 말했다. “오빠, 이거 내가 의과대학 다닐 때 사진이다. 나 평양의대 졸업한 여의사야. 평양에서 정말 존경받고 살고 있어. 가스도 매달 주고.” 동생 순옥씨는 65년여 세월을 따라잡으려는 듯 쉴새없이 말을 건넸다. “여동생이 이렇게 잘됐다니 정말 영광이다. 나는 고등학교 선생님 30년 하고 교장으로 퇴직한 지 10여년 됐어.” 오빠와 동생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연신 웃었다. “혈육은 어디 못 가. 오빠랑 나랑 정말 똑같이 생겼다. 오빠 통일되면 정말 좋을 거야. 통일돼서 단 1분이라도 같이 살다 죽자 오빠.”
형 조정일(87)씨는 북녘의 막내동생 조정환(68)씨를 보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월남한 가족이 찾으면 혹여 피해가 될까 걱정돼” 상봉을 신청할 엄두도 못 내던 그 동생의 “생사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했다. 정일씨가 이름을 지어준, 전쟁 나던 해 태어난 막내는 가족사진을 꺼냈다. 행여 세월에 바랠까 빳빳하게 코팅한 사진이었다. “나랑 닮았잖아. 내가 아버지를 꼭 닮았다고.” 조씨는 사진을 이리 보고 저리 봤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첫날인 20일 오후 고성 금강산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남측 조혜도(86) 할머니가 북측에서 온 언니 조순도(89) 할머니를 보고 오열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이날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사진을 보며 세월을 곱씹고, 나이 든 서로에게서 어릴 적 흔적을 찾으려 애썼다. 김달인(92)씨가 북쪽 여동생 김유덕(85)씨에게 “노인이 됐어”라고 하자, 여동생 유덕씨는 “오빠 만나려고요, 이렇게 오래 살았어”라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왜 이렇게 늙었냐. 어렸을 때 모습이 많이 사라졌네. 눈이 많이 컸잖아, 네가. 너 진짜 엄마 많이 닮았다.” 남쪽 문현숙(91)씨는 북쪽의 두 여동생에게서 엄마를 봤다. 북쪽 언니 조순도씨와 상봉한 조혜도(86)씨는 “미인 언니가 이렇게 많이 늙었다. 그런데 바로 알아봤어. 나랑 똑같이 생겼어”라며 웃었다.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다” “정신이 없어 다리가 떨린다” “딸의 결혼식을 미루고 왔다”는 가족도 있었다.
남쪽 이산가족들은 이날 아침 8시35분께 버스 20여대에 나눠 타고 동해선 육로를 거쳐 금강산에 도착했다. 이후 단체상봉, 북쪽 주최 환영만찬에 참여했다. 만찬에서 남녘의 늙은 어머니가 떨리는 손으로 젓가락질을 하자, 북녘 딸이 잽싸게 ‘닭튀기(튀김)’를 엄마 입에 넣어줬다. 형제들은 대동강 맥주를 담은 잔을 부딪쳤다. 21일에는 ‘개별상봉’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외금강호텔에서 열린다.
금강산/공동취재단,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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