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둘째 날인 21일 오후 고성 외금강호텔에서 개별상봉을 마친 남측 가족이 호텔 현관 앞까지 나와 북측 가족을 배웅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왜 (우리 오빠가) 안 오나요?”
5분, 10분… 금쪽같은 시간은 흐르는데 오빠는 나타나지 않았다. 여동생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둘째 날인 21일, 상봉 행사의 꽃인 ‘개별상봉’을 앞두고 외금강호텔 객실을 나와 기다리던 남쪽 여동생은 약속시각이 지나도 오빠 모습이 보이지 않자 애간장이 녹았다. 일각이 여삼추, 그렇게 15분이 흘렀다. 오빠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빠 왔네! 왔어.” 할머니는 뛸 듯이 기뻐했다.
이날 개별상봉은 3년 전인 20차 상봉 행사에 비해 ‘진화’했다. 남과 북의 피붙이 말고는 아무도 보는 이 없는 호텔 객실에서 밀린 이야기를 오붓하게 나눌 시간이 2시간에서 3시간으로 늘었다. 누군가는 ‘그깟 한 시간’이라 치부할지 모르지만, 평생을 기다려 얻은 ‘한 시간’이다. 이전에는 호텔 객실 상봉 2시간 뒤 자리를 옮겨 점심을 먹었지만, 이번엔 점심도 도시락으로 호텔 객실에서 함께 먹도록 개선한 덕분이다. 그만큼 밀린 이야기를 할 시간이 늘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세 시간 동안 외금강호텔 1층부터 8층까지 객실마다 마주앉은 남과 북의 89가족이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무래도 (개별상봉이 단체상봉보다) 자유로운게 훨씬 낫습디다.” 개별상봉을 마친 남쪽 이영부(76)씨가 말했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둘째날인 21일 오전 외금강호텔에서 북측 접대원들이 개별중식을 위해 도시락을 옮기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식사 왔습니다.” 한복 차림의 북쪽 접객원은 닭고기편구이, 낙지후추구이, 숭어완자튀기(튀김), 금강산송이버섯볶음 등이 담긴 도시락을 객실마다 일일이 배달했다. 취재진이 ‘생애 첫 남북 가족 도시락 점심’의 소감을 묻자 이영부씨가 환하게 웃었다. “얼마나 맛있어. 기분 좋고!” 이씨는 북쪽 조카들한테서 선물로 받은 백두산 들쭉술, 평양술, 대평곡주를 꺼내 보이며 자랑했다.
개별상봉 시간엔 남과 북의 가족이 서로 준비해 온 선물도 주고받았다. 북쪽 가족들은 개별적으로 준비해 온 선물에 더해 북쪽 당국이 나눠준 선물 꾸러미를 남쪽 가족에게 전했다. 남쪽 가족도 정성껏 준비해 온 갖가지 선물을 북녘 가족한테 건넸다.
“상봉 마치기 10분 전입니다.” 개별 상봉과 점심시간이 끝나간다는 야속한 안내 방송이다. 남쪽 가족 숙소인 외금강호텔에 찾아와 상봉을 마친 북쪽 가족들이 하나둘 방문을 열고 나왔다. 두 시간 뒤(오후 3시)면 단체상봉을 다시 하는데도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남쪽 가족들이 복도까지 나와 배웅한다. “이따 봅시다.” 3시간이나 함께 있었는데도 아쉬움이 가득하다.
호텔 정문 앞까지 북쪽 가족과 손을 맞잡고 따라 나선 이들도 있다. “여기까지요. 이따 또 만나실 거예요.” 대한적십자사 관계자가 제지했다. 남북이 합의한 ‘규칙’이란다. 북쪽 가족들이 5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호텔을 떠나려 하자 남쪽 가족들은 물기 어린 눈을 먼 산 쪽으로 돌린다.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창가를 서성이는 이들이 숱하다.
“우리 아버지 뒤통수에 혹이 있었는데, 그걸 알고 계시더라.”(북쪽 조카 김학수(56)씨) “인민군으로 간 형님의 병과와 생년월일을 기억하는 게 딱 맞더라니까.”(남쪽 작은아버지 김종삼(79)씨) 남녘 삼촌과 북녘 조카는 서로 말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가족끼리만 공유하는 작은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맞춰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호텔 객실 개별상봉 때 풀어헤친 보따리에서 흘러나온 60여년 묵은 이야기가 단체상봉장에 흘러넘쳤다.
남북 이산가족이 2박3일 동안 만나는 11시간 중 9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남쪽 동생 배순희(82)씨는 북쪽 언니 배순복(87)씨와 쌀과자를 나눠 먹다 목이 멘 듯 한동안 숨을 골랐다. “못다 한 얘기를 더 나누고 싶어요. 어제, 오늘 한 얘기도 또 하고 싶어요.” 반백년을 훌쩍 넘겨서야 두 손을 맞잡은 남북의 가족은 22일 작별상봉을 끝으로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이다. 금강산/공동취재단,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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