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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죽기 전 우리 집서 밥 먹고…” 이산가족 ‘3시간 작별상봉’

등록 2018-08-22 14:01수정 2018-08-22 15:02

금강산 상봉행사 마지막 날, 주소·전화번호 교환하고
“내가 타는 버스는 8번, 8번이야” 북녁 여동생에 알려주고
“오빠 울지마” 다독여도 오빠는 아무말 없이 눈물만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둘째날인 21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남측 백민준(93) 할아버지의 북측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통신취재단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둘째날인 21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남측 백민준(93) 할아버지의 북측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통신취재단

20∼22일 금강산에서 열린 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1차 행사가 막을 내렸다.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은 22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금강산호텔에서 작별상봉을 가졌다. 가족들은 ‘마지막’ 술잔을 부딪쳤다. 심장이 아프다며 준비해 온 청심환을 까 먹는 이산가족도 보였다. 남쪽 89가족 197명을 태운 속초행 버스는 오후 1시30분께 금강산을 떠났다. 작별상봉 장면, 장면을 전한다.

■ “우리 다시 만나면 찾아갈 수 있게…” 주소, 전화번호 교환하는 이산가족

양경용(89)씨는 북쪽 두 조카 량명석(63)·명찬(60)씨와 서로 전화번호, 주소를 주고 받았다. 조카들은 “통일이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라고 했고, 양씨도 “그럴 거다”라고 답했다. 이날 대부분의 이산가족들은 연락처와 명함을 주고 받았다. 언제 갑자기 왕래가 가능해져 서로에게 가닿게 될지 모르니 잘 간직해둬야 하기 때문이다.

남쪽에서 아버지 독고란(91)씨와 함께 온 아들 독고석(55)씨는 북쪽 사촌들과 함께 가계도를 그렸다. 혹시라도 나이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들이 이날 그린 가계도를 보고 북녘의 가족을 찾을 것이다. 북쪽 형수님과 조카를 만난 남쪽 김종태(81)·종삼(79)씨 형제는 북쪽 가족과 함께 에이포 용지에 가계도를 그렸다. “그래야 나중에 만나면 알지.”

“애들 이름 좀 적어줘라.” 남쪽 이수남(77)씨는 북쪽 조카 리명훈(50)씨에 자녀들의 이름을 적어달라고 했다. 조카 리씨는 10여명의 형제, 손자들의 이름 종이에 적어 작은아버지에게 건넸다. “사는 동안 기억 하려고….” 이수남씨는 취재진이 이번 상봉행사에서 큰형과 조카를 만난 소감을 묻자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생각에 잠기다 입을 뗐다. “또 만날 수 있을지…. 젊었더라면 모를까, 걱정입니다. 안부라도 묻고 살면 좋겠는데…. (남쪽에 묻혀 계신) 부모님 산소에 가서 ‘아버님, 어머님. 우리 종성이 형님 잘 살아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하고 말할 겁니다.”

■ 그저 눈물만 쏟아…“오래 살아야 다시 만날 수 있어.”

이날 마지막 작별상봉장에서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눈물만 쏟아내는 이산가족도 적지 않았다.

오빠 김병오(88)씨는 북쪽 여동생이 작별상봉장에 들어와 테이블에 앉자마자 눈동자를 허공으로 돌렸다. 옆에 앉은 여동생을 차마 쳐다보지 못한 채 흐느꼈다. “오빠 울지마. 울면 안돼.” 동생이 오빠 손을 잡으며 말했지만 오빠가 말을 듣지 않는다. 이내 침착하던 여동생 눈시울도 벌게지고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남매는 10분이 넘도록 아무 말 하지 못하다 “하이고….” 탄식만 내뱉었다.

남쪽 큰오빠 김춘식(80)씨는춘실(77)·춘녀(71) 자매 옆에 앉아 눈물을 주륵주륵 흘렸다. 전란 때도 동생들만 두고 남쪽에 갔는데, 이제 또 오빠는 남으로, 동생들은 북으로 간다. 그런 오빠를 보는 자매도 손수건에 얼굴을 묻는다. 미안한 마음에 말도 잇지 못하던 오빠가 입을 열었다. “오래 살아야 다시 만날 수 있어.”

문현숙(91)씨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가락지와 시계를 꺼내 북쪽에 남은 여동생에게 끼워주고 채워주고는 이내 눈물을 훔쳤다. 몸이 아파 오지 못한 동생까지 세 자매에게 줄 가락지와 시계를 머릿수를 맞춰 준비해왔다.

■ 개성에서 김포까지 금방인데…“죽기 전에 우리 집에 와서 밥 먹자”

“내가 타고 가는 버스는 8번, 8번, 8번 버스야.” 오빠 신재천(92)씨는 “엄마하고 똑 닮은” 북녘의 여동생 금순(70)씨에게 자신이 탈 버스 번호를 알려주고 또 알려줬다. 일가족 중 혼자 남쪽으로 피난을 나와 평생 외로웠던 신씨. 동생 금순이를 향한 그리움이 사무쳐 밤마다 혼자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를 불렀었다. 이렇게 동생을 만나 “기쁘고 한이 풀리고” 그랬는데, 다시 이별이다.

오빠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약과 봉지를 뜯어 금순이 접시에 올려주며 말했다. “서로 왕래하고 그러면 우리집에 데리고 가서 살도 찌우고 하고 싶은데…. 죽기 전에 우리 집에 와서 밥도 먹고 그래.” 막내 동생은 “아, 개성에서 김포 금방이잖아! 빨리 통일이 돼야 해”라고 밝게 말했다. “내가 차 가지고 가면 (김포에서 개성까지) 40분이면 가. 왕래가 되면 배불리고 갈텐데….” 2박3일 내내 맛난 음식을 먹으면서도 동생에게 뭘 더 해주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큰오빠 마음이다. 북녘의 두 딸과 상봉한 남쪽 한신자(99)씨는 상봉 시간 내내 신신당부를 하느라 바쁘다. “찹쌀 같은 것이 영양이 좋으니 그런 걸 잘 먹어야 한다.” “네, 어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 해. 그게 내 소원이야.”

남쪽 김진수(87)씨는 올해 1월 사망한 북쪽 여동생 대신 그의 아들과 며느리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낙지예요. 하나 드셔보세요.” 북쪽 조카며느리가 튀김을 하나 집어주자, “응? 오징어지” 김씨가 말했다. “에? 낙지예요∼.” “낙지는 이렇게 긴 거지.” “아아, 거기서는 낙지가 오징어군요!” 밥상에 웃음꽃이 피었다. 서로 달리 사용하는 용어 하나하나도 다 재미난 이야깃거리고 웃음거리다.

금강산/공동취재단,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화보] 금강산 이산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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