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쪽 리근숙(84) 할머니가 남쪽 가족들이 간직하고 있던 14살 때 만든 자수를 받고 들어 보이고 있다. 금강산/뉴스통신취재단, 연합뉴스
리근숙(84)씨와 황보우영(69)씨는 성은 다르지만 같은 어머니를 둔 남매다. 엄마는 첫째딸 리근숙씨를 중국 하얼빈에서 낳아 한국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새로 결혼을 해 황보원식(78·여)·우영(69·남)·구용(66·남)·해용(58·남) 남매를 낳았다.
큰딸 근숙씨는 14살 무렵 고향인 강원도 양양을 떠났다. 원산 봉직공장으로 돈을 벌러 갔다. 큰딸은 집을 떠나며 직접 손으로 뜬 ‘자수’ 하나를 남겼다. 가로 15cm, 세로 10여cm 정도의 작고 하얀천에 보라색, 분홍색 실로 꽃이 그려진 자수였다.
큰딸이 집을 떠난 뒤 전쟁이 났다. 엄마는 집 떠나 생사를 알길이 없는 딸을 가슴에 묻고, 그가 남긴 자수를 고이 간직했다. 큰딸 근숙씨의 생일, 칠월 칠석날만 되면 장독대에 위에 촛불을 켜 둔 채, 정한수를 떠다 빌고 또 빌었다. 11년 전, 92살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는 남쪽에 있는 자식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우리 근숙이가 어디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꼭 알아봐라. 근숙이를 만나면 이걸(근숙씨가 북에 가기 전 남긴 작은 자수 천 조각) 꼭 전해줘라.”
남쪽 동생 황보우영씨는 이번 이산가족상봉에서 70여년 만에 누나를 만나 엄마의 유언을 전했다. 25일 3시간 동안 진행된 개별상봉 때 자수를 누나 손에 꼭 쥐어줬다. 엄마가 큰딸 생각을 하며 세상의 모든 신에게 빌고, 또 비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보여줬다. 큰딸 근숙씨는 흘러간 시간 만큼이나 누렇게 변한 자수에 얼굴을 묻었다.
“근숙 누님을 만나보니 어머니가 다시 살아온 거 같아요. 김새뿐 아니라 행동거지, 말투, 모든 게 닮았어요.” 남녘의 동생들은 큰 누나, 언니에게서 돌아가신 엄마가 보여 눈시울이 붉어졌다.
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둘째 날인 25일 오후 북한 외금강호텔에서 북쪽 리근숙(84) 할머니에게 전달할 자수를 남쪽 이부동생들이 보여주고 있다. 이 자수는 리근숙 할머니가 전쟁 전 만든 자수로 어머니가 보관하고 있다가 전달해달라고 유언을 남기셨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25일 21차 남북 이산가족상봉 2차 행사의 둘째날이 밝았다. 금강산은 19호 태풍 솔릭이 한반도를 막 떠나면서 맑게 갰다. 금강산 수정봉이 잘 보일 정도였다. 이날 남북 81가족은 오전 10시부터 3시간 동안 호텔 객실에서 가족끼리만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개별상봉’에 참여했다.
북녘의 이모 강정화(85)씨를 만난 남쪽 조카 조영자(65)씨는 이날 “(개별상봉 시간을 통해) 방해받지 않고 상봉하게 돼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은 25일 개별상봉 3시간에 이어,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두번째 단체상봉을 한다. 26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동안 작별상봉을 한 뒤 공동 점심식사(1시간)를 하고 각자 남과 북으로 다시 돌아간다. 기약없는 이별이다. 금강산/공동취재단,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