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아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갈무리
북한이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70돌’(9·9절)을 맞았다. 북한이 5년 만의 집단체조 공연과 열병식 등 대대적인 경축 행사를 여는 가운데, 열병식의 수위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설 여부, 핵심 메시지 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9·9절을 축하하기 위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축전과 함께 리잔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과 발렌티나 이와노브나 마트비옌코 러시아 연방평의회 의장 등을 사절단으로 보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는 것으로 9·9절의 공개활동을 시작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70돌에 즈음하여 9월9일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으시었다”고 전했다. 참배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룡해 당 부위원장, 박봉주 내각 총리를 비롯한 당과 정부 간부 등이 참가했다. 북한 매체들이 지난 2012년 9월9일 이후 김 위원장의 9·9절을 맞이 금수산궁전 참배 소식을 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평양에서 펼쳐질 열병식에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정주년이었던 지난 2013년 9·9절 열병식에도 참석한 바 있다. 다만 9·9절 열병식에서 직접 연설을 한 적은 한 차례도 없어 김 위원장이 참석해 연설할지, 한다면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가 주요 관심사다. 북한은 그간 평양 미림비행장 일대에서 1만여명 규모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열병식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열병식에서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등장시키면 미국에 좋지 않은 메시지로 작용할 수 있다. 앞서 북한은 지난 2월8일 건군절 70돌을 맞아 개최한 열병식에 전차와 방사포, 자주포 등 재래식 무기와 함께 화성-14형, 화성-15형 등 장거리미사일도 선보였으나 눈에 띄는 새로운 전략 무기는 없었다. 또 지난해보다 열병식 시간을 1시간가량 줄이고 생중계하는 대신 오후에 녹화방송을 함으로써 ‘수위 조절’을 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주말새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면서 교착 상태인 북-미 관계가 새 동력을 찾을지 주목되는 터라, 북쪽이 이번 열병식도 대미 메시지를 고려해 기획했을 것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북한 정권수립 70주년을 맞아 8일 평양을 방문한 리잔수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을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이 영접했다고 조선중앙TV가 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9·9절을 축하하기 위해 중국, 러시아 등 주요국 인사들도 속속 도착했다. 특히 8일 방북한 리잔수 중국 상무위원장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최룡해 당 부위원장 겸 조직지도부장, 리수용 당 국제담당 부위원장 등 주요 인사들이 공항에 나가 맞이하는 ‘국빈급 영접’으로 눈길을 끌었다. 김 부부장의 경우 지난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긴 처음이다. 완전히 복원된 북-중 우호관계에 대한 고려와 시 주석이 중국 내 서열 ‘3인자’를 파견하는 등 ‘성의’를 보여준 데 대한 북쪽의 ‘답례’로 보인다. 리 상무위원장은 중국이 9·9절에 파견한 인사로는 역대 최고위급이다. 북쪽이 중국 대표단에게 국빈 숙소인 백화원영빈관을 내주며 이들을 각별히 환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 주석은 김 위원장에게 축전을 보내 “중국당과 정부는 중조친선협조관계를 고도로 중시하고 있으며 중-조 관계를 훌륭하게 수호하고 훌륭하게 공고히 하며 훌륭하게 발전시키는 것은 중국당과 정부의 확고부동한 방침”이라고 강조했다고 <중통>이 전했다.
지난 7일 평양에 도착한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러시아 상원의장 마중에는 리수용 부위원장과 리혜정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이, 힐랄 알 힐랄 시리아 아랍사회부흥당 지역부비서 맞이에는 최룡해 부위원장과 리일환 당 부장 등이 나갔다. 이밖에도 쿠바의 살바도르 발데스 메사 국가평의회 수석부의장과 캄보디아의 호르 남홍 부총리 등 고위 인사들이 축하 사절단으로 방북했다.
그럼에도 시 주석의 불참, 진전없는 북-미 관계 등 이유로 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9·9절을 “민족적 대사”라고 강조했던 것에 비춰보면 이를 빛낼 ‘정치적 성과’의 무게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게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조선중앙티브이>가 지난2월8일 오후 녹화 중계한 ‘건군절'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실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가 등장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북-미 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해 9·9절엔 김 위원장 주재로 6차 핵실험 성공을 자축하는 대규모 연회가 북한 국빈 연회장인 목란관에서 열렸다. 당시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당의 병진로선을 높이 받들고 국가 핵무력 완성의 완결단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환으로 되는 력사적인 수소탄 시험에서 완전 성공함으로써, 당 제7차 대회 정신을 결사보위”하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에 앞선 2016년 9월9일에는 북한은 5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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