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김대중-김정은 남북 정상의 첫 역사적 만남
북핵 문제 포괄적 해법 모색하는 가운데 평양 방문
2007년 노무현-김정은 한반도 평화 번영 방안 협의
6자회담 재개 등 변화 분위기 타고 군사분계선 넘어
2018년 문재인-김정은 비핵화와 종전선언 접점 모색
북핵 문제 포괄적 해법 모색하는 가운데 평양 방문
2007년 노무현-김정은 한반도 평화 번영 방안 협의
6자회담 재개 등 변화 분위기 타고 군사분계선 넘어
2018년 문재인-김정은 비핵화와 종전선언 접점 모색
18일 남북정상회담은 2000년과 2007년에 이어 세번째로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이다.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담은 남북 정상의 첫 만남이라는 것 자체로 역사가 됐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담은 한반도 평화와 번영이라는 미완의 화두를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소개하는 청와대 누리집은 1차 정상회담에 ‘벽을 넘어’, 2차 정상회담에는 ‘선을 넘어’라는 제목을 붙였다.
김 대통령의 평양행은 북한과 미국의 대립 속에서 냉전의 벽을 뛰어넘으려는 시도였다. 1998년 8월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자 미국은 금창리 지하핵시설 의혹을 제기하면서 대북압박을 강화했다. 6개월 전 취임사에서 “북한이 원한다면 정상회담을 개최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김 대통령으로선 난감한 상황이었다. 1999년 5월 윌리엄 페리 대북조정관이 방북하고, 그해 10월 빌 클린턴 정부가 북핵 문제에 대한 포괄적 접근을 담은 이른바 ‘페리 프로세스’를 내놓으면서 틈이 생겼다. 김 대통령은 2000년 3월 ‘베를린 선언’을 통해 남북관계의 획기적 발전 구상을 안팎에 천명했다.
베를린 선언 직후 남북 간에 비밀스런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3월17일 중국 상하이에서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과 송호경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의 비공개 접촉을 시작으로 모두 세차례의 만남이 이어졌다. 남북은 4월10일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다. 남북은 애초 6월12일 김 대통령이 방북하는 일정에 합의했지만, 회담 이틀 전 북한은 ‘기술적 준비’를 이유로 하루 연기를 요청했다. 임동원 당시 국가정보원장은 회고록 <피스메이커>에서 “우리는 이것을 김 국방위원장이 공항 영접을 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고 술회했다. 북한은 당시 두 사람의 만남을 ‘정상회담’이 아니라 ‘상봉’이라고 주장하며,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국가 원수로 내세웠다.
김 대통령은 6월13일 평양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서울공항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저의 이번 평양길이 평화와 화해에의 길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을 제거하고 남북 7천만 모두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냉전 종식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김 대통령의 목소리에선 벅차오르는 감회와 굳은 각오가 묻어났다. 김 대통령은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 국방위원장의 영접을 받았다. 두 사람의 만남은 남쪽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됐다. 하늘길로 방북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김 국무위원장이 공항에서 맞는다면, 18년 전과 비슷한 장면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과 김 국방위원장은 방북 둘째날인 6월14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3시간14분 동안 회담하고, 6·15 공동선언문 작성에 합의했다. 방북 첫날인 6월13일에는 김 상임위원장과 만났다. 김 국방위원장과도 27분간 만났지만, 이는 회담에 앞선 환담의 성격이 강했다. 문 대통령은 방북 첫날부터 김 국무위원장과 회담에 들어간다.
1차 회담이 내내 순탄치만은 않았다. 두 사람은 선언문 서명 문제를 놓고 입씨름을 벌였다. 김 국방위원장은 김용순 비서나 김 상임위원장의 이름을 넣자고 주장했다. 김 대통령이 남북 정상의 이름과 직책을 넣어야 한다고 설득하자, 김 국방위원장은 “대통령이 전라도 태생이라 그런지 무척 집요하군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이에 김 대통령이 “김 위원장도 전라도 전주 김씨 아니오. 그렇게 합의합시다”라고 말해 좌중에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김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공동선언문에 명시하는 문제도 쉽게 풀리지 않았다. 김 대통령의 제안에 김 국방위원장이 난색을 표했다. 임 전 국정원장은 “김 대통령의 설득은 간청이라도 하듯 간곡했다”고 회고했다. 결국 공동선언문에는 김 국방위원장이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회담 이후 열린 만찬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김 대통령과 김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양쪽 참석자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불렀다. 두 정상은 만찬 도중 공동선언문 최종안을 보고받고, 연단으로 나가 손을 잡고 두 팔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마침 그 자리에 사진기자들이 없어 기자들을 부른 뒤 다시 같은 포즈를 취했다. 1차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록된 이 장면은 연출로 이뤄진 셈이다.
남북 정상은 7년 만에 다시 평양에서 만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10월2일 남북을 가로막은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남쪽 최고지도자가 군사분계선을 넘은 것은 처음이었다. 이 장면은 <시엔엔>(CNN)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노 대통령은 군사분계선을 표시한 노란선 앞에서 “제가 다녀오면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질 것입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방북 첫날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김 국방위원장의 영접을 받았다.
노 대통령은 2003년 취임 초기부터 남북정상회담을 소망했으나, 임기를 6개월 남짓 남겨둔 상황에서 평양행을 추진했다. 2005년 북핵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 공동성명의 진전을 가로막았던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의 북한 자금 제재 문제가 2007년 2·13 합의로 풀리자 결심을 굳혔다. 2007년 7월 초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접촉이 추진됐다. 김 국정원장은 7월29일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북해 김 통일전선부장과 만나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남북은 애초 정상회담을 8월28~30일에 개최하기로 했으나, 북한에 대규모 수해가 발생하는 바람에 10월로 연기했다. 1차에 이어 2차 남북정상회담도 처음 합의한 날짜에 열리지 못한 것이다.
미국은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송민순 당시 외교장관은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미국은 (노 대통령의 방북을 앞두고) 크게 두가지를 우려했다. 하나는 한국이 비핵화를 위해 북한에 쓸 수 있는 수단을 미리 풀어버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휴전체제와 관련된 사항을 일방적으로 합의해 나중에 한-미 간에 이견의 불씨를 남기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정상회담은 방북 둘째날인 10월3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오전과 오후로 나눠 3시간51분 동안 진행됐다. 김 국방위원장은 오후 회담에서 노 대통령에게 “오늘 일정을 내일로 늦추는 것으로 해 모레 서울로 돌아가시는 게 어떠냐”라며 갑작스럽게 체류 연장을 제안했다. 노 대통령은 “나보다 더 센 데가 두 군데 있는데 경호·의전 쪽과 상의해야 할 것 같다”며 즉답을 피했다. 김 국방위원장의 돌발적인 제안은 그날 저녁 집단체조 ‘아리랑’ 공연이 우천으로 취소될 수 있었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왔다. 김 위원장은 오후 회담 말미에 체류 연장 제안을 스스로 거둬들였다. 비가 그쳐 아리랑 공연도 예정대로 진행됐다. 노 대통령은 김 상임위원장과 함께 공연을 관람했다. 북한은 아리랑 공연 중 이념성을 강조한 부분을 상당 부분 수정하는 성의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방북 첫날 오후에 환영 공연과 만찬 참석이 예정돼 있다. 김 국무위원장과 새로운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할지 주목된다.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 대통령은 방북 첫날 만수대예술극장에서 전통무용과 기악곡을 중심으로 한 공연 ‘평양성 사람들’을 지켜봤다.
2차 정상회담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노 대통령은 방북 첫날인 10월2일 김 상임위원장을 만난 뒤 “엄청난 사고방식의 차이를 느껴 잠을 자지 못했을 정도였다. 벽이 너무 두꺼워 한가지나 합의할 수 있을지 눈앞이 캄캄했다”고 회고했다. 김 국방위원장과 오전 회담을 할 때는 “이렇게 하면 점심 먹고 짐 싸고 가야 될지도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김 국방위원장에게 서울 답방을 공식 요청했으나 김 국방위원장은 사양했다. 김 국방위원장은 1차 남북정상회담 때와는 달리 남쪽의 답례 만찬에 참석하지 않았다. 마지막 날 환송 오찬에 참석한 김 국방위원장은 “내가 마치 당뇨병에 심장병까지 있는 것처럼 보도하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불쑥 건강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김 국방위원장은 보란 듯이 건배를 한 뒤 와인을 ‘원샷’했다. 10·4 선언 서명식을 마친 뒤 두 정상은 7년 전 그때처럼 손을 잡고 두 팔을 들어올렸다.
문 대통령과 김 국무위원장의 만남은 판문점에서 열린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세번째이다. 앞선 두 차례의 평양 남북정상회담은 남쪽 대통령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만큼 남북 정상 사이에 구축된 신뢰의 크기와 무게가 다르다. 대북제재 속에서 판문점선언 이행에 속도를 붙이고,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와 안전보장 교환 협상에 동력을 불어넣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번 정상회담은 정상 간의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대화에 무게가 두어져 있다”며 “일체의 형식적 절차를 걷고, 두 정상 간 회담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과거 두 차례의 평양 정상회담과 다르다”고 말했다.
유강문 선임기자 moon@hani.co.kr
18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찾은 시민이 ‘서울-평양 내일 만나요’전을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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