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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문정인 “김정은·트럼프 재회하려면 서로 ‘빅 카드’ 꺼내야”

등록 2018-10-01 05:00수정 2018-10-01 22:38

[인터뷰] 평양회담 세 차례 동행한 문정인 특보

김정은 “퇴행 없이 결과 만들어야”
‘영변 핵시설 폐기’ 큰 제안 했지만
미, 핵탄두·ICBM 양보도 원할 것
상응 조처로 큰 인센티브 내놔야

제대로 된 핵사찰 위해 북 협력 필요
종전선언이 신뢰 구축 시금석 될 것
문 대통령, 한반도 평화 포괄적 접근
‘평양회담’ 정상적 남북관계 보여줘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28일 오후 서울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 사무실에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28일 오후 서울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 사무실에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모두 ‘빅 카드’(큰 패)를 써야 한다. ‘검증 원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순차적 방식으로는 빅 딜(큰 거래)이 이뤄지기 어렵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평양 정상회담에서 ‘가능한 한 빠른 시기에 완전한 비핵화를 끝내고 경제 발전에 집중하고 싶다’며) 분명히 비핵화를 서두르겠다고 했다. 그에 상응하는 (미국 쪽의) 큰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전략적 사고를 바꿔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평양 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동행했던 문 특보는 지난 18일 목란관 만찬 때, 김 위원장이 “우리는 매우 어렵게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여기에서 퇴행은 있을 수 없습니다. 결과를 만들어내야 합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고 전했다.

인터뷰는 지난 2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 특보 사무실에서 1시간30분 동안 진행됐다.

┕ 평양 회담과 뉴욕 한-미 정상회담 전후의 한반도 정세는 어떻게 다른가?

“평양 회담이 반전의 분수령을 만들었다. 한반도 정세를 추동하는 3개의 축, 곧 남북, 한-미, 북-미 관계가 선순환할 계기를 마련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 취소, 미-중 통상 마찰에 따른 ‘중국 역할 무력화’로 예측하기 어렵던 한반도 정세의 난기류를 상당 부분 걷어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발표했고, 김정은 위원장을 연일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한-미 관계도 돈독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안에 흔쾌히 서명했고, 문 대통령이 요청한 한국 자동차 관세 면제에 대해서도 배석자들한테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

┕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추가로 이뤄져야 할 일은 무엇인가?

“당장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오스트리아 빈 회담’이 활성화돼 진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폼페이오의 4차 방북이 있어야 할 것이다. 폼페이오의 방북이 이뤄지면 미-북 사이에 ‘빅 딜’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김 위원장을 만나겠나. 종전선언 하나만 한다는 것은 미국 국내 여론이 정치적으로 수용하기 상당히 어렵다.

김 위원장이 (미국의 상응조처를 전제로) 영변 핵시설을 영구 폐기하겠다고 한 건 큰 제안이다. 핵무기 전문가인 시그프리드 헤커 미 스탠퍼드대 명예교수가 지적한 대로, 영변은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 생산 시설부터 핵 전문가 양성 대학에 이르기까지 북한 핵개발의 핵심 거점이다. 미국은 그에 더해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과 관련한 가시적 양보를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어떤 상응조처를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예컨대 연락사무소 설치, 수교 협상 개시, 종전선언 채택,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완화 결의 등 일련의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북한도 더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 북-미는 6·12 정상회담 이후 ‘신고 대 종전선언’ 구도로 이견을 보여왔다. 평양과 뉴욕 회담을 거치며 이 프레임에 변화가 있나?

“헤커 교수가 27일 연세대 특강에서 강조한 대목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는 상호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신고·검증에 집착하면 막다른 골목으로 몰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북한이 미국을 믿지 못하면 핵무기·핵물질·핵시설의 완전한 리스트(명단)를 내놓기 어려우리라고 봤다. 설혹 완전한 리스트를 내놓더라도 미국 쪽에서 북한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분명히 속임수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리라고 봤다. 상황이 이러하니 북한의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 제안을 받아들여 우선 폐쇄 작업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쌓은 신뢰를 동력으로 신고와 사찰 문제도 풀어나갈 수 있으리라는 게 헤커 교수의 제안이다. 아울러 그는 신고·검증·사찰에는 북한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협력적 검증’(협력적 전환)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찰과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협력이 가능한 신뢰가 쌓여야 한다. 종전선언은 북-미 간 신뢰를 구축하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

┕ 미 중간선거(11월6일) 변수를 어떻게 봐야 하나?

“큰 변수는 아니다. 10월 중 폼페이오의 평양 방문만 성사돼도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큰 정치적 이득이다. 희망을 주는 것이니까. 2차 북-미 정상회담은 결국 중간선거가 끝나고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 최근 한반도 정세 변화의 원동력은 뭐라고 보나?

“문 대통령의 중재자, 촉진자, 주도적 역할이 사태 반전에 큰 공헌을 했다. 김 위원장의 역할도 크다. 문 대통령이 그런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쥐려 하는데 김 위원장이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면 일이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속마음을 읽었다고 본다.”

┕ 한국 대통령이 남북 관계를 넘어 북-미 관계 등 한반도를 둘러싼 문제에서 이니셔티브를 쥐는 건 사실 낯선 풍경이다.

“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남북 관계 발전은 북-미 관계 진전의 부수적 효과가 아니다’라고 강조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북-미 관계가 안 풀리면 비핵화가 안 되고, 비핵화에 모든 걸 걸면 남북 관계, 한반도 평화체제도 힘들어진다. 남북 경제공동체, 평화공동체 등 아이디어도 물거품이 된다. 8·15 경축사는 ‘북-미 관계만 바라보고 있지 않겠다, 나의 길을 가겠다’는 문 대통령의 평양과 워싱턴에 보내는 메시지였다. 2006년 11월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의 종전선언 아이디어를 낸 필립 젤리코 버지니아대 교수의 ‘북한 비핵화는 포괄적 평화 과정의 맥락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접근과 유사하다. 문 대통령이 상당히 포괄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 이제 평양 회담을 돌아보자. 특별수행원으로 2박3일간 함께했는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문 대통령이 5·1경기장에서 15만 평양 시민 앞에서 연설을 하고, 비핵화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낸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상징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백두산 천지에 함께 올라 손을 맞잡은 장면이 중요하다. 4·27 판문점 회담 때 두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넘나든 장면과 함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민족의 미래라는 8천만 한겨레 모두의 관심사를 웅변적으로 드러낸 순간이다.”

┕ 평양 회담을 이전의 남북정상회담과 비교하면?

“정상회담이 거듭되며 뚜렷하게 진화의 양상을 보인다. 총론(2000년)에서 각론(2007년)으로, 다시 실천적 조처(2018년)로 진일보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2차 정상회담은 탐색적 성격이 강했다면,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3·4·5차 회담은 실천적·실무적 성격이 강하다. 1·2차 회담 땐 두 정상이 5~6시간 정도 함께했는데, 5차 평양회담에선 17시간을 함께 지냈다. 신뢰의 깊이에 차이가 있다. 국제정치사에 이렇게 밀도 높은 정상회담은 없었다.”

┕ 평양 회담이 70년 분단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짚는다면?

“첫째, 분단과 적대를 넘어선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제시했다. 둘째, 분단의 인위성과 비정상성을 드러내 남북 관계가 아주 정상적일 수 있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줬다. 셋째, 텔레비전 등 비주얼 매체를 통해 남북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보여줬다. 두 정상과 함께 우리 모두가 5·1경기장에 가고, 백두산 천지에 올랐다.”

이제훈 노지원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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