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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지뢰의 땅, ‘위~잉’ 굉음 속 풍경은 기이하게 평화롭더라

등록 2018-10-03 15:02수정 2018-10-03 16:51

DMZ 화살머리 고지 지뢰제거작업 르포
11월까지 지뢰 제거 작업 뒤 유해발굴
20㎏장비 무거워 10~15분 작업 뒤 교대
국군 200명, 프랑스·미군 100명 유해 추정
2일 강원도 철원군 5사단 인근 비무장지대에서 군인들이 지뢰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남북은 군사분야 합의서에서 10월 1일부터 20일까지 판문점 지뢰부터 제거하기로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2일 강원도 철원군 5사단 인근 비무장지대에서 군인들이 지뢰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남북은 군사분야 합의서에서 10월 1일부터 20일까지 판문점 지뢰부터 제거하기로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남북 공동유해발굴 사업이 본격 막을 올린 다음날인 2일 오전 강원도 철원군 대마리 비무장지대(DMZ)내 ‘화살머리 고지’ 정상에서 북쪽으로 능선이 이어지는 곳. 지뢰탐지 장비로 중무장한 장병 7명이 나란히 서서 주변 땅 곳곳을 샅샅이 탐지하고 있었다. 맨 앞쪽에 지뢰탐지 장비인 ‘숀 스테드’를 든 장병이 주변 땅 밑을 샅샅히 뒤지고 지나가면, 바로 뒤엔 ‘예초기’를 든 장병이 주변의 무성한 풀을 짧게 잘라 시야를 확보하고 나섰다. 또 곧바로 ‘지뢰탐지기’ 운용병 2명과 ‘공기압축기’ 운용병 1명, 또 다른 지뢰탐지기 운용병 1명이 뒤따랐다. 이들은 지뢰로 의심되는 물체가 탐지되면 표식만 하고, 지뢰 확인 및 제거는 따로 폭발물 처리반이 와서 한다고 한다.

숀 스테드는 땅 속 깊이 3m 아래까지 금속을 탐지할 수 있는 장비다. 현지부대 지휘관은 “숀 스테드로는 ‘M14 대인지뢰’ 탐지가 안되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숀 스테드로 먼저 탐지한 뒤엔 민감도가 각각 다르게 설정된 지뢰탐지기들로 두세 차례 다시 탐지한다”고 설명했다. 일명 ‘발목지뢰’로 통하는 M14 대인지뢰는 재질이 플라스틱이어서 금속탐지기에 반응하지 않는다. 공기압축기는 지뢰로 의심되는 물체가 포착되면 그 주변에 강한 바람을 분사해 안전하게 시야를 확보하는 구실을 한다.

이들 지뢰탐지팀의 행렬 전방엔 K-1 또는 K-2 소총 등으로 완전 무장한 경계병 3명이 배치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다고 들었으나 능선에 가려 보이진 않았다. 대신 이들 행렬 후방엔 또 다른 경계병 3명이 소총으로 무장하고 경계를 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군 당국이 2일 비무장지대내 화살머리 고지에서 진행하고 있는 지뢰제거 작업을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날 육군 5사단 관할구역에 있는 ‘57통문’을 통과해 올라간 화살머리 고지에는 ‘감시초소’(GP)가 콘크리트 요새처럼 서 있었다. 그곳에서 북쪽 능선을 따라 눈길을 옮기니 산넘어 북한 감시초소도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말 그대로 남북대치의 최전선이라는 게 실감났다. 이런 곳에서 위험천만한 지뢰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긴장감은 전혀 안느껴졌다. 내내 공기압축기 펌프 모터만 ‘위~잉’ 하며 굉음으로 귀를 때릴 뿐이었고, 따사로운 가을 햇살과 아직 녹음을 벗지 않은 주변 풍광이 여유롭고 평화롭게 느껴져 오히려 기이했다.

2일 강원도 철원군 5사단 인근 비무장지대에서 군인들이 지뢰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일 강원도 철원군 5사단 인근 비무장지대에서 군인들이 지뢰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남북이 공동유해발굴 장소로 이곳 화살머리 고지를 선택한 것은 이곳의 상징성 때문이다. 화살머리 고지는 해발 281m로, 서울 남산(해발 270.9m)과 비슷한 높이의 비교적 작은 산이다. 그러나 이날 화살머리 고지에 오르니, 남쪽으로 넓게 펼쳐진 철원평야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이 곳이 적에게 제압되면 철원평야가 위태로워지는 전략적 요충이라는 현지부대 간부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런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6·25 전쟁 당시 화살머리 고지는 그 동쪽에 있는 백마고지(해발 395m)와 함께 남북간 밀고 당기는 쟁탈전이 거듭됐던 곳이다. 당시 화살머리 고지전에는 국군뿐 아니라 미군과 프랑스군, 중국군 등도 참전했다. 군 당국은 화살머리 고지에 묻힌 유해가 국군 200명, 미군·프랑스군 100명 남짓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일 태극기와 유엔기가 비무장지대 화살머리고지 GP에서 휘날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일 태극기와 유엔기가 비무장지대 화살머리고지 GP에서 휘날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접전지역이었기 때문에 화살머리 고지 주변엔 수많은 지뢰와 불발탄도 묻혀 있다. 사람의 안전을 위협할 이들 지뢰와 불발탄을 먼저 걷어내야 남북 공동유해발굴이 진행될 수 있다. 현지부대 지휘관은 “이곳은 계획 매설된 지역이 아니다. 아군과 적군이 서로 견제하기 위해 많은 지뢰를 뿌린 미확인 지뢰지역이다. 어디에, 얼마나 많이 매설돼 있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 하나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살머리 고지 지뢰제거 작업은 고지 두 곳에서 이뤄진다. 한 곳은 기존에 장병들이 비무장지대 감시를 위해 이용하던 수색로 주변이다. 화살머리 고지 북쪽 능선으로 이어진 수색로 800m 구간에서 폭 4m 범위까지(800m×4m 면적) 지뢰를 제거하는 작업이다. 현지 부대 지휘관은 “현재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수색로의 폭이 1~2m이다. 이 폭을 4m로 넓이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또 산 아랫쪽에 구축된 교통호 주변의 지뢰도 제거된다. 교통호 500m 구간에서 폭 10m 범위(500m×10m)가 대상이다. 현지부대 지휘관은 “이번 작업을 위해 3개월 전부터 이곳 지형 숙지 정찰을 하는 등 많은 준비를 해왔다”며 “작업은 안전 문제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며 진행한다”고 말했다.

작업에는 지뢰제거 공병 80명이 참여한다. 이들은 모두 1년 이상 지뢰제거작업을 해온 경험 많은 베테랑이며, 투입되는 인원의 40%가 간부라고 한다. 작업은 오전 2시간, 오후 2시간, 하루 4시간씩 할 방침이다. 작업을 할 때는 안전을 위해 보호의와 지뢰화·덧신, 헬멧, 방탄조끼, 보호대 등 20㎏이 넘는 장비를 착용한다. 작업은 매우 고되다고 한다. 군 당국자는 “매우 힘든 작업이기 때문에 통상 10~15분 정도 작업한 뒤 다른 조와 교대한다”고 말했다.

지뢰제거 작업엔 이들 공병만 있는 건 아니다. 지뢰제거 작업 중에 유해가 나올 가능성에 대비해 유해발굴 TF(티에프) 13명이 대기하고 있고, 폭발물 처리 전담 EOD( Explosive Ordinance Disposal) 팀 4명과 안전사고에 대비한 군의관을 포함한 의무팀 4명도 상시 대기한다. 또 5사단 수색대대 4개팀 24명도 경계팀으로 지뢰제거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현지부대 지휘관은 “지뢰제거 작업은 11월까지 마칠 계획이다. 겨울에는 땅을 파기 어렵기 때문에 유해발굴 작업은 내년 4월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남북 공동유해발굴 장소의 접근성 확보를 위한 도로 개설작업도 곧 착수할 계획이다. 새로 뚫리는 도로는 비무장지대 내 ‘역곡천’을 건너는 다리 ‘비마교’에서 출발해 화살머리 고지 동쪽 기슭을 달려 군사분계선(MDL)에 이르는 폭 12m×길이 1.7㎞의 길이다. 언론 공개행사가 있었던 2일에는 도로가 시작되는 비마교 인근 지점에 붉은 깃발 표식만 꼽혀 있었다.

도로 개설작업도 지뢰제거가 먼저 진행된 뒤 추진된다. 지뢰제거 작업은 먼저 굴삭기로 한 뒤 지뢰탐지팀이 투입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현지부대 지휘관은 “방탄 굴삭기가 굴토작업을 하는데 이 굴삭기 바가지는 그물망으로 돼 있다. 지뢰가 묻혀 있다면 대부분 굴삭기 그물망에 걸러진다”고 말했다. 지뢰제거엔 공병 30명이 투입되며, 유해발굴 TF와 의무팀, 폭발물처리반, 경계팀 등이 지원한다. 도로 개설사업도 올 연말까지 마무리할 방침이다.

남북은 1일부터 각자 자기 지역에서 지뢰제거와 도로 개설 작업을 하기로 합의했다. 따라서 북쪽도 지뢰제거 작업을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지부대 지휘관은 “북쪽에서 비무장지대로 들어오는 통문 지역은 산악 지형에 가려 있어 이곳에서 보이지 않는다. 북쪽도 작업을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육안으로 확인된 건 없다”고 말했다.

철원 화살머리고지/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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