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10월7일 평양공항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배웅하고 있다. 미 국무부 제공.
8일(현지시각) 열릴 예정이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북-미 고위급회담이 7일 갑작스럽게 연기됐다. 미 국무부의 회담 공식 발표 뒤 하루 만에 회담이 돌연 미뤄진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미 국무부는 이날 헤더 나워트 대변인 명의 성명을 내 “이번주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던 폼페이오 장관과 북한 당국자들의 만남이 추후 어느 시점에 열리게 될 것”이라며 “우리(북-미)는 각자의 일정이 허락할 때 다시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진행하고 있는 대화는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과 북한 당국은 회담 연기의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제재 문제를 둘러싸고 북-미가 절충점을 찾지 못한 것이 주원인이라고 분석한다. 미국은 ‘선 비핵화, 후 제재 해제’ 입장을 고수하는 반면 최근 북한은 제재에 대한 불만 목소리를 높이며 비핵화와 제재 완화의 동시적 조처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제재 문제의 매듭을 풀기 위해 김영철 부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면담을 강하게 요구했으나, 이날까지도 미국의 확답을 받지 못하자 결국 막판에 회담 연기를 요청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김영철 부위원장 일행은 6일과 7일 베이징발 뉴욕행 항공편의 예약과 취소를 반복하며 막판까지도 미국의 확답을 기다린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이 없으면 미국이 제재 완화·해제의 전향적 태도를 보이기 힘들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9일부터 유럽을 방문하는 일정 등을 들어 면담에 난색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내에선 비핵화 조처를 시작했는데도 제재 때문에 가시적 경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적대세력들이 우리 인민의 복리 증진과 발전을 가로막고 … 악랄한 제재 책동에만 어리석게 광분하고 있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1일 <노동신문> 발언이 대표적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쪽이 요구하는 대북제재 완화에 대해 미국은 비핵화가 완료될 때까지 안 된다고 하는 상황이라 북쪽에서는 회담을 열어봐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북-미 고위급 인사가 직접 만났는데도 성과가 없으면 대화의 동력까지 잃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양쪽이 만족할 성과를 낼 만한 사전조율이 될 때까지 회담 날짜를 미루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도 “이번 회담에서 성과를 내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고 북한이 판단했을 수 있다”며 “고위급이든, 실무회담이든 북-미 간에 결국 회담이 열릴 것이다. 미 중간선거가 끝났으니 트럼프 대통령이 운신의 폭이 넓어진 점도 희망적이다”라고 말했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과거에도 북-미 간 회담이 예정됐다 연기된 사례가 종종 있다.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며 “미국이 다시 일정을 잡겠다고 했으므로 대화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회담 연기를 공식 발표하기 전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에게 미리 관련 내용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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