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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단독] 김진호 향군회장 “난 강경 보수지만, 남북군사합의는 비핵화 과정”

등록 2018-11-23 04:59수정 2018-11-23 23:40

김진호 재향군인회장 인터뷰
김진호 대한민국 재향군인 회장이 22일 오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 향군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김진호 대한민국 재향군인 회장이 22일 오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 향군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우리 군이 합의한 것입니다. 그것을 불신한다면 우리 군을 해산하라는 얘기 아닙니까?”

김진호(77) 재향군인회장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9·19 남북 군사합의’가 안보 역량을 훼손한 참사라는 일부 예비역 장성의 비판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그런 주장이 한때 군을 지휘한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상황이 답답한 듯했다. 22일 서울 향군회관에서 이뤄진 김 회장과의 인터뷰는 남북 군사합의를 놓고 이른바 진보와 보수 사이에 이견이 불거지는 작금의 상황에 대한 우려로 시작됐다.

김 회장은 “9·19 군사합의는 궁극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하기 위한 과정”이라며 “이를 두고 마치 군이 대비태세를 약화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비핵화는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우리가 핵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의 핵을 폐기하기 위해서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협의 과정이 불가피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국내 최대 안보단체인 향군을 이끌고, 스스로를 “전형적인 강경보수주의자”라고 부르는 이의 말로는 꽤 파격적이다. 그는 합참의장 시절 1차 연평도 해전을 겪었고, 북한의 핵실험에 맞서 독자적인 핵무장을 주장하기도 했다. 지금도 한-미동맹의 강화를 주장하고, 신중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주문하며, 대체복무제가 병사들에게 박탈감을 주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는 군사합의를 둘러싼 이견을 “북한을 불신하는 쪽과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추구하는 쪽의 인식 차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진보냐 보수냐의 이념논쟁이 아닌 국가와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북한의 핵을 어떻게 폐기시킬 것인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지금 북한의 핵을 없애고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미래로 가느냐, 아니면 분단 이후 반세기 동안 지속된 대결 구도로 계속 가느냐 하는 갈림길에 있습니다. 안보는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존망이 걸린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9·19 군사합의 불신한다면
우리 군 해산하란 말인가

안보문제는 좌우 이념 아닌
국민 생명 걸린 중대 사안
정치적 논쟁 대상 돼선 안돼

서해에 평화수역 조성되면
분쟁 사라지고 군인 안전해져

핵을 머리에 이고 살 건가
비핵화 정책이 현재론 최선

김 회장은 얼마 전 한 일간지에 실린 광고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한다. “남북 군사합의 토론회를 알리는 광고였습니다. 거기에 ‘국군은 죽어서 말하고, 사는 동안 행동한다’라고 적혀 있습디다. 국군보고 무슨 행동을 하자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남북 군사합의는 재래식 요소의 유불리를 따지기 이전에 우발적 충돌이 전면전으로 비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군이 결정한 남북 군사합의를 스스로 부정하라는 요구는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합참의장 시절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싸우지 말고 죽지도 말라’는 지침을 내린 기억이 납니다. 서해에 평화수역이 조성되면 북방한계선 일대의 분쟁이 사라지고, 병사들도 안전해질 것입니다.”

향군은 지난 19일 ‘정부의 비핵화 정책에 대한 입장’이란 제목의 자료를 내어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정착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군사합의서와 관련해선 군을 무능력한 집단으로 매도하거나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선동을 자제하라고 촉구했다. 이 때문에 그는 ‘좌파정권의 심부름꾼’ ‘정권의 하수인’이라는 비난을 들었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진영논리가 얼마나 완고한지 절감한 순간이었다.

지난 8월엔 빨갱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재향군인회 미주지회에서 한반도 안보정책에 관해 미국 동포들을 상대로 강연을 했습니다. 북한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 미국 동포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적극 지지해주기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 보니 이 강연 내용이 유튜브에 올라 있는 겁니다. ‘이놈도 빨간색이네’라는 댓글이 달린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합참의장까지 지낸 군사전문가를 빨갱이로 모는 진영논리가 군사합의서에 대한 평가를 가로막는다고 여긴다.

김 회장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북한의 비핵화 정책이 현시점에서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도 박근혜 정부도 모두 한결같이 남북 평화정착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남북 교류협력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가장 거부감을 느끼는 북핵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이 핵을 보유하지 못한 오늘의 상황에선 모든 가용수단을 동원해 북한의 핵을 폐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는 “북한이 필요한 것을 얻게 되면 결국 핵을 포기할 것”이라며 “누구도 보장할 순 없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

유강문 선임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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