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서울 롯데호텔에서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주최한 '9·19 남북 군사합의서의 의미와 과제'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국방연구원 제공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9·19 남북 군사합의서의 의미와 과제'란 주제로 23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연 세미나에서 군사합의서를 ‘북한에 대한 항복문서’라고 비난하는 식의 과도한 정치공세를 경계하는 군사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랐다. 군사전문가들은 군사적 측면에서도 군사합의서가 우리 군의 태세에 끼칠 영향은 미미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황병무 국방대 명예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세미나에서 김영준 국방대 안전보장대학원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9·19 남북 군사합의는 의도하지 않은 분쟁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군사적 신뢰 구축 조처”라며 “정책적 대안 없는 무조건적인 비판은 비생산적 담론이며, 담론의 정치화”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평화공존을 통한 장기적 통일전략을 구상하고 있다”며 “군사합의서는 분단상태를 평화롭게 관리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안광수 국방연구원 군사발전연구센터장은 “군사합의서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상징한다”면서도 “막연한 추론에 근거한 주장들로 인한 소모적 갈등은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남북 군사합의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공포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선택”이라며 “두려움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북한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 센터장은 군사합의서의 해상 포사격 및 해상기동훈련 중지와 관련해 “해당 지역에 배치된 북한의 전력 규모가 우리보다 3~5배 높은 수준”이라며 “위협의 감소효과는 우리에게 더 크다”고 강조했다.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대해선 “한-미의 정찰자산 성능을 고려할 때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인한 영향은 미미한 수준이며, 오히려 북한의 정찰활동이 상당한 제한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 철거와 관련해선 “북한은 인력 중심의 경계작전을 수행하기 때문에 감시초소 철거는 북한의 경계선을 2㎞ 밖으로 철수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서해 평화수역 설정 문제에 대해선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남북의 이견이 없는 연평도 동쪽 해상에서 평화수역 및 공동어로구역을 시범적으로 설정하는 게 타당하다"고 제안했다.
토론자로 나선 문성욱 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군사합의서가 남북의 군사력을 이격시킴으로써 충돌 가능성을 줄이는 등 긍정적 측면을 갖고 있지만, 남북 신뢰 구축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군사력의 운용을 통제하는 조처들이 포함되는 등 부정적 측면 또한 있는 게 사실”이라며 “북한의 합의 이행을 확인하는 꼼꼼한 검증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계획 수립”을 주문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군사합의서는 우발적 충돌로 인한 핵전쟁을 예방하고, 비핵화-평화체제 구축-남북관계 개선 사이의 선순환을 끌어내기 위한 디딤돌”이라며 “남북 군사협력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함의를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성걸 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한반도의 전쟁 위기 상황을 감안하면, 남북 군당국이 군사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에서 공동 유해발굴을 위한 도로를 연결하고, 악수까지 하는 지금의 모습은 획기적인 변화”라며 “안보상황의 변화에 대한 검토는 당연하지만, 과장된 논의는 오히려 남남갈등을 일으켜 대오를 어지럽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신뢰 구축 이후에 운용적 군비통제에 들어가는 게 옳은 순서”라며 “남북 군사공동위원회가 꾸려지면 서해 북방한계선(NLL) 같은 민감한 문제는 일단 미루고 먼저 신뢰 구축 조처들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경영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군사합의서는 핵위협이 없고, 무력충돌도 없는 한반도 미래 안보전략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서해 완충구역 설정과 비무장지대 평화구역화 등 군사합의를 성실히 이행하되, 우발적인 상황에 대비해 강력한 힘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유강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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