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엔엔>이 5일 북한의 새로운 미사일 기지라며 보도한 영저리 기지 관련 기사. CNN 누리집 갈무리
북한이 ‘삭간몰’에서 미사일 기지를 운영하는 등 비핵화 협상 중에도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미국 <뉴욕타임스> 보도가 물의를 일으킨 데 이어 이번엔 북한이 ‘영저동’에서 미사일 기지를 확장하고 있다는 <시엔엔>(CNN) 보도가 나왔다. 이들 미사일 기지가 모두 한-미 정보당국에 의해 오래 전부터 추적되고 있는 곳인데도 미국 언론들이 새로운 활동을 포착한 것처럼 연이어 문제를 제기하는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시엔엔>은 5일(현지시각) 북한이 중국과 접한 양강도 산악지대 영저동 미사일 기지에서 지금껏 공개된 적이 없는 새로운 시설을 건설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가 삭간몰 미사일 기지를 ‘아직까지 신고되지 않은 비밀기지’라고 이름붙인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영저동 기지는 이미 1999년 한-미 정보당국에 의해 노동미사일 기지로 식별된 이후 지속적으로 감시가 이뤄져온 곳이다. 군은 이곳은 ‘영저리 기지’라고 부른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도 1999년 7월 '청와대 관계자'를 인용해 북한이 이곳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 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시엔엔> 보도처럼 새로운 활동이 공개되지 않았더라도 한-미 당국의 감시망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곳이다.
<시엔엔>은 영저리 기지에서 약 7마일(11㎞) 떨어진 곳에 새로 건설되고 있는 시설이 미국까지 타격할 수 있는 신형 장거리 미사일을 은닉할 수 있는 기지일 수 있다고 전했다. 미사일을 저장할 수 있는 지하 터널에서 5개의 입구가 관찰됐는데, 이는 북한이 2010년께 장거리 미사일 용도로 만든 시설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저리 기지는 중거리 노동미사일이 배치된 곳이어서 새로운 시설의 성격을 단정하기 힘들다. 노동미사일을 개량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시설을 확장하는 작업이 이뤄졌을 수도 있다.
<시엔엔>이 근거로 제시한 사진이 구글어스 같은 민간위성에 의해 찍힌 것이라는 점도 보도의 불확실성을 높인다.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삭간몰 기지 동향도 민간위성에서 촬영한 것이었다. 군 관계자는 “상업위성 사진의 해상도만으로는 기지 확장 여부를 정확히 판단하고 분석하는 데 제한이 있다"고 지적했다. <시엔엔>은 미국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의 위성사진 분석을 근거로 제시했다. <뉴욕타임스>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보고서를 인용한 것과 비슷하다. 북한의 동향을 바라보는 미국내 일부 싱크탱크와 언론의 시각이 결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엔엔>은 영저리 기지 동향이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외교적 협상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거의 저지하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뉴욕타임스>가 삭간몰 기지를 보도하면서 북한이 기만전술을 쓰고 있다고 비난한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물론 북한의 이런 동향이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한 모든 활동을 즉각 중단할 것’을 규정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위배될 수는 있다. 그러나 북한이 미사일 활동을 포기하거나 중단하겠다고 약속한 바 없다는 점에서 북-미 합의를 파기했거나 협상을 저해하고 있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미국에서 이처럼 북한의 미사일 기지 활동과 관련한 보도가 잇따르는 데는 트럼프 정부의 대북 협상이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미국 내부의 불만이 자리잡고 있다. 그들에겐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초 김정은 위원장과 2차 정상회담을 여는 게 탐탁하지 않을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내부의 여론전이 달아오를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 삭간몰 기지 보도 직후 “비정상적인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있다"며 보도를 일축한 바 있다.
유강문 선임기자
m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