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받은 친서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친서를 보냈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각) 공개하면서 김정은식 ‘친서 정치’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반년 새 7통의 친서를 백악관으로 띄운 김 위원장식 친서 정치는 어느덧 북-미 관계를 이어가는 주요 축이자 ‘일상’이 돼가고 있다.
김 위원장의 친서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해 6월 초 첫 편지다. 6월12일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쪽의 기싸움으로 정세가 요동칠 때였다. 일방적 핵포기의 의미로 통용되던 ‘리비아 모델’을 앞세워 강경 드라이브를 거는 트럼프 행정부에 북한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날 선 담화로 맞대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취소’(5월24일) 카드를 꺼내 들었다. 김 위원장은 즉각 ‘대리 담화’를 발표해 국면을 수습했으나, 싱가포르 회담이 다시 순풍을 타기 시작한 것은 6월1일(현지시각)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직접 백악관으로 찾아가 김 위원장의 친서를 ‘배달’하면서다. 서류봉투 크기의 ‘거대한’ 하얀색 편지봉투는 화제를 낳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일괄타결’식 비핵화 접근법에서 ‘과정으로서의 비핵화’로 인식 전환을 보이는 한편 싱가포르 회담에서 종전선언을 할 가능성도 처음 내비쳤다. 북-미 관계에서 가장 ‘극적인 반전’을 꾀한 서한이었다.
9월10일(현지시각) 백악관이 공개한 김 위원장의 네번째 친서도 악화 조짐을 보이던 국면을 전환하려는 ‘원대한 목표’를 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8월 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이 발표 하루 만에 전격 취소됐는데, 김영철 부위원장이 보낸 ‘비밀편지’의 영향이 컸다고 알려져 북-미 관계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던 시점이었다. 백악관은 당시 김 위원장이 친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2차 정상회담을 제안했으며, 양쪽이 조율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2차 대반전’이 어느 정도 가시권에 들어오는 듯했으나 동력을 유지하지는 못했다.
9월에는 이밖에도 최소 두 통 이상의 편지가 건네졌다고 알려져 있다. 내용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김 위원장이 북-미 ‘교착국면 완화용’으로 보낸 서신들로 보인다. 21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 지원유세장에서 밝힌 김 위원장의 친서와 닷새 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김 위원장한테서 받았다고 밝힌 “두 통의 편지”가 그것이다. 이 세 통이 모두 다른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를 옆에 앉혀두고 양복 안주머니에서 친서를 꺼내 보이며 “역사적인 편지”라고 자랑을 늘어놓는 장면은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이날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평양 회담을 계기로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이 다시 확정·발표된 날이기도 해, 김 위원장의 ‘릴레이 친서’가 북-미 고위급 회담의 돌파구를 마련했을 수 있다는 관측을 낳았다.
한편 지난해 7월6일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 때 김 위원장이 건넨 두번째 친서는 1차 북-미 정상회담 뒤 정상 간 훈훈했던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한 ‘국면 유지용’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비핵화와 상응조처를 둘러싼 북-미 간 이견이 팽팽히 맞서기 시작했던 상황이라 소기의 성과를 내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새해 벽두에 전해진 김 위원장의 일곱번째 친서는 어떤 ‘뒷심’을 발휘할지 주목된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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