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로운 출발
남 “회담 매우 진지…군사협력이 남북 동력”
북, ‘외적 정세-남북 관계 분리’ 전략적 판단
남 “회담 매우 진지…군사협력이 남북 동력”
북, ‘외적 정세-남북 관계 분리’ 전략적 판단
제17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예상과 달리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지난 2000년 6·15공동선언 이래 남북관계의 장애물은 북-미관계 악화였다. 북쪽 입장에서 보면 부시 행정부가 다시금 북한의 체제 전환 의도를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열린 이번 회담을 앞두고, 정부 안팎에서 비관적 전망이 적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전체회의가 열린 14일 김천식 남쪽 회담 대변인(통일부 교류협력국장)은 여러 차례에 걸쳐 “회담이 매우 진지했다”고 말했다. 소모적인 정치적 논쟁거리가 제기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중단 없는 남북관계=남쪽 수석대표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전체회의 모두발언에서 “대결이 없고, 가다 서다 하는 중단이 없고, 인도적 고통이 없는 3무의 시대를 열자”고 촉구했고, 북은 이에 화합하는 자세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변인이 이날 회담 분위기에 대해 “남북 간에 신뢰가 축적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 것은, 이런 분위기가 전문가인 자신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수준이라는 뜻으로 보인다. 애초 정부 안에서는 내년초로 예정된 정 장관의 정치권 복귀를 들어 ‘떠날 사람’에게 북한이 성의를 보이겠느냐는 관측도 일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변인은 이날 북쪽 기조발언의 특징을 △올해 제2의 6·15시대를 개막했으며 △남북관계를 변함 없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대목에서 찾았다. 북은 이날 6·17 김정일-정동영 면담을 통해 올해 남북관계 발전에서 새로운 국면이 조성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제2의 6·15시대 정신에 맞게 남북관계를 보다 높은 단계로 끌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남북관계를 끌어온 두 개의 수레바퀴 가운데 6자회담이라는 한쪽 바퀴가 삐그덕거리더라도 다른 한쪽 바퀴인 남북관계는 밀고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쪽은 외적 정세와 남북 관계를 분리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북쪽도 북-미간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남-북관계의 모멘텀을 유지하고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나름대로의 계산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남북 주도의 한반도 평화=그러나 6자회담의 전망이 서지 않는 상황에서, 즉 한쪽 바퀴가 멈춰 서 있는 상황에서 다른 한쪽 바퀴를 밀고 가는 게 가능할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정동영 남쪽 수석대표가 △6자회담 이행과정의 난관을 조속히 해결해야 하며 △9·19 베이징 공동성명의 틀을 살려나가는 것이 남북 이익을 실현하는 효과적 방법임을 강조한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6자회담 대표의 제주 비공식 회동 문제는 거론하지 않고, 6자 회담의 조속한 재개만을 촉구했다. 현재로선 뚜렷한 방안이 떠오르지 않는 상황임을 반증하는 것이고, 장관급회담에서 이 문제의 해법을 제시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남쪽은 군사분야에서의 긴장완화를 강조했다. 남쪽 수석대표인 정 장관은 “한반도 평화문제는 남북이 주도적으로 협의하고 긴밀히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 문제의 파고가 높아지더라도 군사분야에서의 협력이 남북 협력을 밀고갈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드러낸 것이다. 남북의 ‘평화’는 핵으로 인한 한반도의 긴장을 막아낼 수 있으며, 이는 9·19 공동성명이 담고 있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통해 핵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이뤄낸다’는 기본인식과 일치된다.
그런 점에서 권호웅 북쪽 단장이 군사분계선 선전물 철거, 군당국간 서해 직통전화 개설 등 군사적 신뢰구축을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한 것은 남북이 접점을 찾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회담에서) 언제 어떻게 군당국이 만난다는 구체적인 합의가 이루어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북쪽이 군사 교류 분야에서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한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천식 대변인도 “북한이 군사 분야에서 초보적 단계에 들어갔다고 얘기하는 것으로 보아 추가적인 협의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장성급회담이나 군당국자간 회담은 남북한의 기존 합의사항을 이행하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군사적 신뢰구축 뿐만 아니라 개성공단 통행·통관, 철도 개통 등 경협 문제가 군사적 보장장치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이날 회의에서 북쪽은 상대지역 방문지 제한 해제를 촉구했다. 이는 정부가 남쪽 내부 여론을 의식해 남쪽 방북인사들의 평양 애국열사릉 참배 등을 제약하는 게 아닌가 라는 문제 제기로 보인다.
제주/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이용인 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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