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4일 대체복무제 대상을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로 지칭하기로 함으로써 지금까지 이들을 가리킬 때 붙던 ‘양심’이란 단어가 문재인 정부 안에서 사라지게 됐다. 헌법 조항과 헌법재판소 결정, 대법원 판결, 국제적 규범 등을 거론하며 ‘양심’이란 말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해왔던 것에 비춰보면 갑작스러운 결정이다.
더욱이 양심이란 용어를 폐기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의 의사가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져, 대체복무제를 바라보는 문 대통령의 인식이 바뀐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체복무제를 도입해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해 형사처벌을 받는 현실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대체복무제 도입 약속은 지켰으나, 양심적 병역거부자란 용어는 거둬들인 셈이다.
청와대는 대체복무제가 입대를 앞둔 청년층에게 민감한 문제여서, 이들의 여론을 무엇보다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년층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대체복무제 도입 논의에 참여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청와대가 대체복무제를 여론의 문제로 접근하면서 인권 보호라는 애초 취지와 멀어졌다”고 비판했다. 논의 과정을 접한 몇몇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청와대를 찾아가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양심이란 용어가 처음부터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고 설명하지만, 적어도 지난해 11월14일 이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국방부는 당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대체복무제 도입 방안 검토’라는 제목의 자료를 내어 “양심적 병역거부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단어이며, 양심의 자유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이라며 “양심이란 용어 자체를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양심이 도덕적이거나 정당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며, 착한 마음이나 올바른 생각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라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해석까지 곁들였다. 국방부의 용어 변경 과정에서 청와대의 의사가 강하게 반영됐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국방부가 지난해 12월28일 입법예고한 법률안에서도 ‘양심’은 살아 있었다. 국방부는 법률안 총칙 제2조에서 “대체복무요원이란 헌법 제19조에 따른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대체역으로 편입된 사람을 말한다”고 정의했다. 국방부도 결국 애초 설명을 뒤집은 셈이 됐다.
시민·인권단체는 문재인 정부가 ‘양심의 자유’라는 기본권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냈다고 비판한다. 이정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인팀 팀장은 “국제인권 기준에서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수영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활동가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취지는 양심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인정하라는 것이었는데, 정부가 ‘양심’이라는 용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국민들에게 잘 설명하면 될 일을 종교적 신앙 문제로 축소시켰다”고 지적했다.
양심이란 용어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이끌어낸 상징과도 같다. 문재인 정부가 이를 폐기함으로써 대체복무제 도입의 취지를 앞장서 퇴색시킨 셈이 됐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국회 입법 과정에서도 양심이란 단어가 사라질 수 있는 단초를 문재인 정부가 제공했다”고 비판했다.
유강문 선임기자,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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