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펴낸 첫 국방백서의 상징색은 파란색이다. 국방부는 “파란색은 미래, 신뢰, 평화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표현이 사라진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지난해 남북관계 진전과 군사적 긴장 완화를 반영한 상징색이라고 할 수 있다.
국방백서에서 북한군을 ‘주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부터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8차 남북 실무접촉에서 “전쟁이 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되고 만다”는 박영수 북쪽 대표의 발언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북한군은 주적”이란 표현은 2000년까지 유지됐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뒤 2003년 김대중 정부가 펴낸 ‘1998-2002 국방정책’에는 ‘주적’ 관련 언급이 나오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직접적 군사위협’(2004년) ‘심각한 위협’(2006년) 등으로 표현했다. 2010년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잇따르자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표현이 다시 등장했다.
다만 국방백서에 ‘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옳은지, 국제적 기준에 맞는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을 직접적으로 적이라 표현한 대목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의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은 남아 있다. 국방부 당국자는 “국방백서를 발간하는 여러 나라들의 표현을 파악해본 결과 직접적으로 적이라고 표현하는 나라는 없다”며 “대부분 ‘위협’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번에 백서를 발간하면서 여러 논의를 했지만,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시민 일반의 인식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국방백서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설명을 늘렸다. ‘2016 국방백서’에 나온 사거리 5000㎞ 이상인 북한 미사일은 ‘대포동’이 유일했다. 이번에는 사거리 5000~5500㎞ 이상인 화성-12·13·14형이나 1만㎞ 이상인 화성-15형 등이 새로 소개됐다. 또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라고 적시하면서도 “우리 군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 노력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하고, 모든 상황에 철저히 대비해 나갈 것”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국방백서가 남북 간 ‘실질적 군비통제’를 언급한 대목도 눈여겨볼 만하다. 국방백서는 “남북 간 교류협력 사업의 진전과 연계하여 안정적인 군사적 보장조치를 추진하고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진전에 따라 실질적인 군비통제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달라진 한-일 관계도 반영됐다. ‘2016 국방백서’는 한-일이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가치를 공유”한다고 표현했으나, 이번 백서에서는 이 표현이 사라졌다.
한편, 국방백서는 대체복무제 도입 추진을 설명하면서 “2018년 6월28일 헌법재판소는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여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고 서술했다. 헌재가 당시 결정문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밝힌 내용과 달라, 헌재의 법적 판단을 왜곡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국방부는 대체복무 대상자를 가리키는 용어를 갑작스럽게 변경하느라 국방백서 공개도 1주일 늦췄다. 인권의 문제를 여론의 관점으로 좁히면서 빚어진 혼란이 국방백서에 고스란히 들어 있는 셈이다.
노지원 유강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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