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두차례나 국무총리를 지낸 계원 노백린 장군의 순국 93주기 추모식이 21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다. 국가보훈처는 이 행사에 독립운동 관련 단체, 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다고 20일 밝혔다.
계원 노백린 장군(1875∼1926년)은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나 한문을 배우다가 1895년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돼 일본 유학을 떠났다. 1899년 일본 육사를 졸업한 뒤 1900년 귀국해 육군 참위로 임관했다. 한국무관학교 교관으로 후진양성에도 전념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돼 2년 뒤 군대가 해산하자 안창호, 이갑, 이동녕, 신채호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하고 고향 송화에 민립학교 광무학당을 설립하는 등 구국교육운동을 전개했다.
1910년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자 미국으로 망명했다. 박용만 등과 하와이에서 국민군단을 창설했다. 김성옥, 허용과 함께 별동대 주임으로서 300여 명의 독립군을 양성했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됐을 때는 군무부 총장으로 임명돼 파리강화회의 대표로 선발됐다. 그 뒤에는 2대 군무총장으로 선임돼 미국에 머물며 1920년 2월20일 캘리포니아주 윌로우스에서 교포 김종림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으로 비행사양성소를 설립했다. 1923년까지 졸업생 77명을 배출했다. 1922년 6월 임시정부의 이승만 대통령은 그를 국무총리 서리에 지명했다. 1923년 1월 정식 국무총리로 추대됐다. 1925년 3월에는 박은식 대통령이 그를 다시 국무총리에 지명했다. 교통과 군무총장직을 겸하며 임시정부를 이끌었다. 장군은 1926년 상해에서 병을 얻어 순국했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