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주한일본무관을 초치해 일본 초계기의 근접 위협비행에 항의한 23일 나가시마 토루 주한일본무관이 서울 국방부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초계기가 23일 오후 2시3분께 이어도 서남쪽 해상에서 작전 중이던 대조영함을 향해 초저고도로 위협비행을 하는 순간,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청사에서 새해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었다. 정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한-일 ‘위협비행-레이더' 갈등과 관련해 “일본이 논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한국의 주장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출구 전략을 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방위성이 21일 밝힌 ‘최종 견해’에서 협의 중단을 선언한 것을 ‘출구 전략’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출구는 추가 도발과 확전이었다.
2시40분께 정 장관이 갑자기 간담회를 중단했다. 급한 연락이 왔다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무슨 일이냐는 질문이 나왔지만, 답변도 하지 않았다. 일본 초계기가 우리 함정을 향해 초저고도로 위협비행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상황 조치를 위해 일어선 것이다. 일본 초계기의 도발이 국방부를 긴박하게 몰아가는 순간이었다.
3시35분께 기자들에게 “일본 초계기가 근접비행한 상황이 있어 곧 입장을 발표한다”는 공지가 떴다. 곧이어 국방부 당국자가 ‘일 초계기 근접비행 관련 국방부 입장’을 기자들에게 건넸다. “공식 발표에 앞서 배포하는 것이며, 표현이 바뀔 수도 있다”는 단서가 붙었다. 그러면서 국방부 장관이 4시께 직접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알렸다.
국방부의 입장은 강경했다. ‘명백한 도발 행위로 간주’ ‘일본의 저의 의심’ ‘강력하게 대응’ 등의 문구가 이어졌다. 일본을 향한 외교적 수사는 일절 없었다. “또다시 이러한 행위가 반복될 경우 우리는 자위권적 조치를 포함하여 강력하게 대응해나갈 것”이라며 ‘자위권적 조치’까지 거론했다. 필요할 경우 무력을 동원할 수도 있다는 용어가 등장한 것이다.
3시53분 새로운 공지가 날아왔다. ‘자위권적 조치를 포함하여’라는 부분을 삭제하겠다는 것이다. 4시14분에는 국방부 장관이 아니라 합참 작전본부장이 입장을 밝힐 것이라는 안내가 날아왔다. 입장의 일부 표현과 발표자가 바뀐 것이다. 4시31분 국방부 대변인실 명의의 공식 ‘입장’이 기자들에게 건네졌다. ‘자위권적 조치를 포함하여’라는 문구는 ‘군의 대응행동수칙에 따라’라는 표현으로 대체됐다. 곧이어 합참 작전본부장이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자위권적 조치’가 ‘대응행동수칙’으로 바뀐 것을 놓고 국방부가 청와대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수위를 조절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돌았다. 국방부 관계자는 “대응행동수칙은 자위권적 조치를 포함하는 용어”라며 “수위를 조절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5시17분 일본 무관이 국방부로 불려왔다. “한국 쪽에서 수십차례 경고통신을 했는데도 왜 무시했나” “협의 중단을 선언해놓고 왜 다시 저공 위협비행을 했는가”라는 질문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유강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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