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베트남 관계
미군 유해 송환으로 시작
원조 제공 등 관계 정상화
북한에 다목적 메시지 줘
미군 유해 송환으로 시작
원조 제공 등 관계 정상화
북한에 다목적 메시지 줘
베트남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국으로 정해지면서 미국-베트남 관계에도 눈길이 쏠린다. 우여곡절 끝에 ‘적에서 친구’가 된 미-베트남 관계가 70년 적대관계를 해소하려는 북-미에 ‘앞서 온 미래’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도미노 이론’에 사로잡힌 미국은 1954년 제네바회담에서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베트남을 두 동강 냈다. 1964년에는 아예 북베트남과의 전쟁에 나섰다. 하지만 미국은 북베트남과의 전쟁에서 끝내 패배(1975년 4월)한다. 베트남전은 미국이 처음으로 진 전쟁이 됐다.
‘철천지원수’ 사이에 다리를 놓은 ‘평화의 사자’는 역설적이게도 베트남전쟁 때 목숨을 잃은 미군 유해였다. 패전 3년째인 1977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미군 실종자 수색, 미국의 원조 제공을 골자로 하는 관계 정상화 협상 대표단을 베트남에 파견했다. 1987년 8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특사를 보내 미국인 실종자로 추정되는 유해 수백구를 받아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사상 첫 정상회담 뒤 내놓은 싱가포르 공동선언 4조에서 “전쟁포로 및 행방불명자들의 유해발굴 진행”에 합의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후에도 2000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하노이와 호찌민을 방문해 두 나라 간 교역이 정상화되고, 베트남이 이를 발판 삼아 미국 시장으로 뻗어나가기까지는 다양한 관계 개선 노력이 있었다. 베트남 정부는 1986년 공산당 6차 대회에서 경제개혁(도이머이) 정책을 채택했고, 미국의 요구대로 1989년 캄보디아에서 철군했다. 아버지 조지 부시 시절인 1991년 4월 미국은 베트남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단계적 로드맵을 발표하고, 100만달러 규모의 인도 지원을 약속했다. 전쟁포로 및 실종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 사무실이 하노이에 들어섰다. 93년 국제 금융기구 원조가 허용되고, 94년 무역금지 조처가 종료됐다. 1995년 2월엔 워싱턴과 하노이에 각각 연락사무소가, 그해 8월 마침내 대사관이 설치됐다.
클린턴 대통령 이후 아들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베트남을 찾았다. 미국과 베트남의 교역 규모는 지난해 10월 기준 493억9000만달러(약 55조원)다. 미국-베트남의 관계 정상화 과정은 현재진행형인 북-미 대화에 시사점을 던진다. 베트남이 경제 발전을 위해 캄보디아 철군이라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미국인 포로·실종자의 유해를 찾아 송환한 것이 신뢰 구축과 관계 정상화의 결정적 계기가 된 점에 주목할 만하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각)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북-미가 60년 전 한국전쟁에서 사망한 미국인 유해 55구 송환을 위해 협력”한 사실을 강조하며 북-미가 추가 발굴 관련 논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해 베트남 경제성장을 예로 들며 “베트남이 지나온 길을 북한이 따른다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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