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연세대 명예특임교수)가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2세미나실에서 열린 '2019년 한반도 정세 전망'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2차 북-미 정상회담 결과와 관련해 “로드맵과 시간표가 중요하다”며 “6·12 싱가포르 합의사항 3가지를 주제로 한 북-미 간 워킹그룹을 만들어 각론을 논의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문 특보는 15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2019년 한반도 정세 전망’을 주제로 한 초청 간담회에 참석해 이런 의견을 밝혔다. 문 특보는 이날 간담회에서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27∼28일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상응조처 로드맵’에 합의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로드맵을 만들고, 시간표를 만들어서 올해 말, 내년 말까지 (북한이 비핵화 조처로) 무엇을 할지 구체적으로 명시하길 원한다”며 “핵 시설·물질, 핵 탄두를 언제까지 없앨지, 미사일도 단거리부터 중장거리,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있는데 리스트를 만들고, 어떻게 폐기할 지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로드맵과 시간표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문 특보는 “로드맵, 시간표에 두 정상이 합의하지 않으면 쌍방이 약속을 어길 가능성이 많아진다”며 “로드맵과 시간표를 만들어 국제사회에 공표해야 양쪽 모두 약속을 지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미는 지난해 6·12 싱가포르 공동선언에서 ①새로운 관계 수립 ②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③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등에 합의했다. 이어 북한은 지난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동창리 엔진 시험장의 영구 폐기와 미국의 상응조치에 따른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 등 구체적인 비핵화 조처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문 특보는 이번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여태까지 나온 북한의 비핵화 조처, 그리고 미국의 상응조치를 모아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만들고, 이를 대내외에 공개해야 싱가포르 합의나 평양회담에서 나온 약속들이 지켜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 특보는 북한이 북-미 간 대화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에 대해 “북한이 원하는 것은 정치적 보장, 북한의 체제 인정이고 두번째는 연락사무소, 국교 수교, 세번째로 군사적 보장, 곧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나 전략무기의 한반도 전진배치 금지가 있다”며 “특히 핵포기 대가로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해제해 줄 것,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개발은행 가입을 막지 말고, 더 나아가 북한에 국제 투자가 가능하도록 해줄 것, 농업·의료·전력 생산 등을 위한 핵의 평화적 이용 허용, 위성 개발 등을 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기본적으로 핵 시설·물질·무기, 그리고 이를 실어나를 탄도미사일을 검증하고 완전 폐기하길 원한다”며 “북-미가 서로 원하는 걸 알고 있으니 매트릭스가 나온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는 이런 것들을 협상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문 특보는 이틀 동안 진행될 예정인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앞서 강조한 로드맵이 당장 완성돼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문 특보는 “두 정상이 1박2일 동안 만나서 로드맵이 다 나올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면서 싱가포르에서 합의한 세 가지(새로운 관계, 평화체제, 비핵화) 축을 기준으로 워킹그룹을 만들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워킹그룹이 비핵화 로드맵을 만들도록 하는 데에 두 정상이 합의하는 것”이라며 “싱가포르 선언은 총론적 성격이 강하니, 하노이에서는 각론적 성격의 합의 내용이 나와야 한다. 각론을 이행할 수 있는 워킹그룹을 만들기로 해야 가시적 결과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어렵지 않을 듯 하다”는 밝은 전망을 내놨다. 그 근거로는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북한의 비핵화가 당장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고, 급하게 하기 어려운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 특보는 “원칙적인 합의만 해도 의미가 있다”며 “북한이 1∼2년 안에 뭘 할지가 나와야 한다. 영변 핵 시설 폐기 외에 북한이 가진 걸로 추정되는 농축 시설에 대한 리스트를 내고, 이를 검증 가능하도록 한다면 누구도 실패라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문 특보는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논의할 의제 가운데 ‘북한이 핵 시설을 비롯해 핵 물질·무기 신고·사찰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쟁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영변 핵 시설 플러스 알파가 될텐데, 미국이 영변 핵 시설 외에 은닉하고 있는 농축우라늄 시설을 사찰해야 한다고 나올 수도 있다”며 “북한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미국이 북한에 보상을 할 수 있다”고 짚었다.
한편, 이번 북-미 정상회담 합의 내용에서 미국이 본토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의 폐기만 포함되는 게 아니냐는 물음에 문 특보는 “트럼프 대통령이 받지 않을 것”이라며 “대륙간탄도미사일은 개발해서 15∼16번 시험 발사한 뒤 안정성과 적중도를 검증하고 배치한다”며 “그런데 북한의 화성-15형은 겨우 한 번 시험발사를 했다. 이거 하나를 포기 하는 대가로 미국이 만족할 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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