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특별열차가 하노이를 향하고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과 55년 만의 북한 최고지도자 베트남 방문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은 외교 무대를 또 한번 넓히고 있다.
2011년 12월 집권 뒤 6년여 동안 ‘은둔’했던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부터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4차례 중국 방문, 싱가포르에서 열린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올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까지 숨가쁘게 외교 행보를 이어왔다.
김정은 위원장의 파격적인 광폭 외교는 ‘은둔의 지도자’였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특히 대비된다. 1994년 권력을 잡은 뒤 2011년 사망할 때까지 김정일 위원장의 해외 방문은 17년 동안 8번뿐이었다. 모두 전통적 우방국인 중국과 러시아 방문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약속했던 서울 방문도 끝내 하지 않았다. 항상 안전을 염려해 ‘1호 열차’로 불리는 전용열차를 이용했는데, 2001년 러시아 방문 때는 평양을 출발해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23박24일 왕복 2만㎞의 대장정을 택했다.
외교 무대를 넓히며 정상 국가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는 북한 주민들에게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의 활발한 외교 행보를 떠올리게 할 것으로 보인다. 김 주석은 1949년, 1950년, 1955년, 1984년 등 여러차례 소련을 방문했고, 40여차례에 걸쳐 중국을 공식·비공식으로 방문했으며 1984년에는 46일간 소련과 동유럽 8개국 순방에 나서기도 했다. 1965년 4월에는 수카르노 대통령의 초청으로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의 비동맹 국가회의(반둥회의) 10돌 기념행사에 참석해 주체사상을 처음으로 대외에 공표했다. 지난해 김정은 위원장의 싱가포르 방문은 김 주석의 인도네시아 방문 이후 북한 최고지도자가 53년 만에 옛 사회주의권 밖으로 나가 국제 외교무대의 전면에 등장한 행보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용열차가 23일 밤 북-중 접경 지역인 중국 랴오닝성 단둥역을 지나고 있다. 단둥/교도 AP 연합뉴스
냉전 시대의 김일성 주석 외교가 사회주의권을 중심으로 움직였던 데 비해, 김정은 위원장은 ‘70년 적국’인 미국의 대통령과 화해와 핵 담판을 하기 위해 싱가포르에 이어 베트남까지 나아갔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판문점 남쪽 지역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하며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김 위원장은 실용적인 행보에 방점을 둘 때는 항공기를 이용하고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의 전통 우호를 강조할 필요가 있을 때는 전용열차를 이용하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산을 유연하게 활용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첫 방중 당시에는 전용열차를 탔지만, 지난해 5월 2번째 방중으로 다롄에 갈 때는 전용기인 ‘참매 1호’를 탔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34년 만에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간 순간이었다. 올해 1월 4차 방중에서는 ‘북-중 수교 70주년’의 의미 등을 고려해 다시 전통우호의 상징인 특별열차를 탔다.
김일성 주석은 1958년 북베트남의 하노이를 공식 방문했다. 호찌민 주석의 1957년 평양 방문에 대한 답방이었다. 당시 김 주석은 중국의 베이징, 우한, 광저우 등을 방문해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류사오치 등 중국 지도부와 만난 뒤, 1958년 11월27일부터 12월3일까지 베트남을 방문했다. 박종철 경상대 교수는 “58년 김일성 주석이 베트남 공식 방문에 앞서 중국의 여러 도시를 방문한 것은 북한이 중국인민지원군을 철수시킨 뒤 악화될 수 있는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하려는 우호적 제스처였고 중국의 경제 발전 상황을 직접 살펴보려는 목적도 있었다”고 했다. 김일성은 베트남전쟁 와중인 1964년 11월에도 중국과 하노이를 비공식 방문한 뒤 곧바로 북한 공군 비행사들을 북베트남에 지원군으로 파견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 답방과 러시아 방문에 나서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평양을 방문하는 등 활발한 외교가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오는 6월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김정은 위원장이 초청받아,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정상이 만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하노이 북-미 공동성명에 “적절한 시기에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을 방문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한다”는 구절이 들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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