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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판문점서 시작한 평화 여정, 그리고 ‘하노이의 봄’

등록 2019-02-25 20:51수정 2019-02-25 22:39

북미 정상회담 D-1
전쟁 뒤 미국과 수교한 베트남서
북-미, 정상회담 열고 ‘종전선언’ 논의
판문점-싱가포르-평양 평화의 여정
하노이는 탈냉전 새 출발점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다시 만난다. 지난해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처음 얼굴을 맞댄 지 8개월 만이다.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에서의 만남 이후 북-미가 비핵화와 상응 조처를 놓고 ‘냉전’을 치렀던 것을 떠올리면 하노이의 재회 역시 ‘모든 것을 이겨낸’ 자리라고 할 수 있다.

하노이는 벌써 봄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 막을 내린 평창 겨울올림픽은 한반도를 뒤덮은 냉전의 얼음을 녹여 ‘판문점의 봄’(4·27 남북정상회담)을 낳았다. 평화의 기운이 ‘싱가포르의 여름’(6·12 북-미 정상회담)과 ‘평양의 가을’(9·19 남북정상회담)로 이어졌다. ‘하노이의 봄’은 한반도 냉전 해체를 향한 또다른 출발점이다.

■ 하노이의 봄, 전쟁의 종식을 향하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북-미가 걸어온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주고받기엔 믿음이 부족했다. 북-미는 △새로운 관계 수립 △한반도에서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포괄적 목표에 합의했으나, 이후 협상에서 실질적인 이행 방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한달 뒤 이행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평양을 찾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핵 신고와 검증을 앞세웠다. 북한은 이를 “강도적인 요구”라고 비난했다. 미국은 폼페이오 장관의 후속 방북을 하루 전날 전격 취소했다. 북-미 협상은 교착상태로 빠져들었다.

하노이는 적이 친구로 바뀐 땅이다. 베트남은 15년 동안 전쟁을 치렀던 미국과 1995년 수교했다. 미국의 편으로 참전했던 한국과도 1992년 국교를 맺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테이블에는 비핵화 조처와 함께 한반도 전쟁 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종전선언 카드가 올라 있다.

■ 평양의 가을, 북-미 교착에 돌파구를 만들다
북-미를 다시 협상 테이블로 불러들인 것은 9·19 평양 남북정상회담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평양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했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는 미국을 향한 약속이었다. 문 대통령은 5·1경기장에 모인 15만 평양 시민들 앞에서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자”고 다짐했다.

김 위원장은 비핵화 조처에서도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미국이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 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영변 핵시설 폐기라는 비핵화 조처를 먼저 제시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상응 조처를 촉구한 것이다. 영변 핵시설의 완전한 폐기는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금단의 영역이다.

김 위원장의 제안은 북-미 협상 재개로 이어졌다. 폼페이오 장관이 10월7일 평양을 방문해 김 위원장을 다시 만났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4개월 만에 이뤄진 고위급 만남이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을 “매우 성공적인 아침”이라고 불렀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는 올해 신년사에서도 거듭 강조됐다. 김 위원장은 “완전한 비핵화로 나가려는 것은 나의 확고한 의지”라며 “언제든 또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앉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반드시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얼마 뒤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날 “우리는 2월 말 다시 만나기로 했다”며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화했다.

■ 싱가포르의 여름, 화염과 분노를 잠재우다
남북이 평양 정상회담을 통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끌어낸 것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벌어진 상황과도 비슷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24일 “최근의 담화문에서 드러난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을 볼 때, 이번에는 회담을 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본다”며 정상회담 취소를 전격 선언했다. 북한 외무성 관리들이 미국의 ‘선 비핵화 요구’를 거칠게 비난한 직후였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사흘 뒤 판문점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을 열었다. 남북은 김 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재확인함으로써 상황을 제자리로 돌렸다.

북한과 미국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전까지 전례없는 ‘말의 전쟁’을 치렀다. 미국이 ‘최대의 압박과 관여’를 공언하며 군사적 선택 가능성을 내비치면, 북한은 미국도 결코 무사할 수 없을 것이라며 맞불을 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를 언급한 이후에는 달력을 넘길 때마다 한층 험악한 전쟁위기설이 한반도를 휘감았다.

■ 판문점의 봄, 한반도 냉전 해체를 선언하다
위기를 가라앉힌 건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어낸 남북관계의 진전이었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평창올림픽 기간에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특사로 내려보냈고, 문 대통령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단장으로 하는 특사단을 올려보냈다. 남쪽 특사단이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면서 한반도 정세는 대결에서 대화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4월27일 판문점 정상회담은 한반도 냉전 해체를 향한 거대한 드라마의 출발이었다. 두 정상은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훌쩍 넘었다. 그러고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통해 “한반도에 더는 전쟁이 없을 것이며,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을 맞아 연내 종전선언을 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겠다는 공동의 목표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함께 서서 “우리는 결코 뒤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유강문 선임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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