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용호 북한 외무상(가운데)이 1일 오전 0시15분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한밤 기자회견을 열어 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 무산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설명을 반박하고 있다. 왼쪽은 최선희 외무성 부상. 하노이/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우리 (김정은)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앞으로의 조(북)-미 거래에 대해 좀 의욕을 잃지 않으시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을 제가 받았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28일 사실상 결렬된 뒤 북한 쪽 입장을 전하기 위해 1일 새벽(현지시각) 기자회견에 나선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말이다. 미국과의 협상 결과에 대한 김 위원장의 반응을 전한 것인데, 북한 체제에서 관료가 공개적으로 최고지도자의 속마음을 추측해 말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최 부상은 1차 북-미 정상회담 때 북쪽의 실무협상 대표로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와 의제조율에 나섰던 북한 내 최고 미국전문가로 꼽힌다. 지난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의 대화상대(카운터파트)로 지명됐다가, 올 들어 갑자기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에게 자리를 내줬다. 일각에서는 최 부상이 밀려난 게 아니냐고 관측했지만, 최 부상은 26일 하노이에 도착한 김 위원장이 북-미 실무협상 경과를 보고받는 자리에 배석해 건재함을 확인했다. 이 자리에는 하노이에서 21일부터 미국과 협상을 해온 김 특별대표와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 김 위원장을 수행해 하노이에 온 최 부상과 그리고 리용호 외무상이 참석했다.
1일 새벽 기자회견에서 북한 입장을 발표한 리용호 외무상은 북-미 협상을 총괄해온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더불어 27일 저녁 두 정상 간 친교만찬과 28일 확대회담까지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행사에 빠지지 않고 배석했다. 상급인 리수용 노동당 외교담당 부위원장이 배석하지 않은 점은 리 외무상이 김영철 부위원장에 이어 대미 북핵협상의 ‘2인자’라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특히, 김 위원장이 자신을 대신해 미국의 주장을 반박하는 중대한 기자회견을 맡긴 것은 향후 리 외무상의 역할이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북-미가 향후 비핵화-관계정상화 이행 로드맵을 구체화할 단계에 접어들면 리 외무상이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날 기자회견을 그간 대미 협상을 이끌어온 김영철-김혁철 라인이 아닌 리 외무상과 최 부상이 진행한 것을 두고는 몇가지 해석이 나온다. 우선 북한이 국가간 관계에서 좀더 공식성을 띠는 외교라인을 통해 입장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28일 기자회견에 대한 입장을 내는 것인 만큼 ‘격’을 맞췄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향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비건 특별대표과 마주 앉아 해법을 모색해야 할 김영철-김혁철 라인을 보호하려는 김 위원장의 외교적 계산이 깔렸다고 분석할도 수 있다. 앞으로 원만한 대미 협상을 고려한 조처라는 풀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의 입장을 반박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정확하게 이를 전할 수 있는 전문가를 택한 게 아닌가 싶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