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최선희 외무성 부상(왼쪽)과 리용호 외무상(가운데)이 지난 1일 새벽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심야기자회견을 열고 하노이 정상회담 합의 무산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노이/노지원 기자
북-미 협상이 난항을 겪는 가운데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북한 외교의 ‘대변인’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최선희 부상은 15일 평양에서 북한 주재 외교관들과 외신을 불러모아 회견을 열고, 미국과의 협상 중단 가능성과 핵·미사일 실험 재개 가능성까지 거침없이 밝혔다.
최 부상은 지난달 27∼28일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합의가 무산된 직후에도 북한 당국자로서는 유일하게 언론의 질문 공세에 응하며 북한의 입장을 대변했다. 최 부상은 지난달 3월1일 새벽 리용호 외무상과 함께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심야 기자회견을 열어 합의 무산에 대한 미국의 ‘북한 책임론’을 반박하며 북한의 입장을 처음으로 대외에 밝혔다. 당시 준비해 온 원고는 리 외무상이 읽었지만,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는 최 부상이 나서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앞으로의 조미(북미) 거래에 대해서 좀 의욕을잃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이라는 발언까지 했다. 최 부상은 다음 날에도 멜리아 호텔에서 남쪽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평양에서 열린 이번 외신 기자회견에서도 최 부상은 귀국길에 김 위원장이 ‘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가 다시 이런 기차 여행을 해야 하겠느냐’고 말했다고 전하는 등 김 위원장의 발언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지난해 6·12 싱가포르 북미회담 직전 펜스 부통령을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라고 비난했다가 한때 회담을 좌초시킬 뻔한 ‘거친 입’의 장본인인 최 부상의 부상은 미국 쪽에서 대표적인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권이 강화된 것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 회담 이후 미국에서는 볼턴 보좌관이 전면에 등장해 북한이 미국이 요구하는 ‘빅딜·일괄타결’을 받아들일 것을 압박하며, 대북 제재 강화 가능성까지 언급하는 등 북한 압박에 앞장서 왔다. 이에 대해 북한은 최선의 부상을 내세운 강한 메시지로 기싸움에 나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 대미외교의 상징적 인물로 능력과 중량감을 갖춘 최 부상이 이런 메시지를 전하는 데 적임자라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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