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열린 대규모 유세에 참석해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그랜드래피즈/AFP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11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열기로 한 것은 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 무산 뒤 약화된 북-미 대화의 동력을 시급히 살리자는 데 한-미 정상이 공감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뒤 한달 열흘 남짓 만에 열리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포스트 하노이’의 방향타를 정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지난달 28일 하노이 정상회담이 ‘노딜’로 마무리되면서 한반도 정세를 이끌어온 남·북·미 정상의 ‘삼각축 톱다운 외교’는 중대 고비를 맞았다. 애초 곱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던 미국 조야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 안에서도 하노이 회담을 ‘톱다운 방식의 실패’로 규정하는 회의론이 공공연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하노이 이후 상황 악화를 방지하고 관리해온 주역들도 세 지도자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제재·압박의 파고를 높이려는 행정부 내 강경 기류와 달리 북한 자극을 자제하며 지난 22일 ‘대북 추가 제재 철회’를 지시했다. 북쪽에서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지난 15일 ‘비핵화 협상 제고’를 경고하면서도 “두 최고지도자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는 여전히 좋고 궁합(chemistry)은 신비할 정도로 훌륭하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북-미 대화의 촉진자를 자임하면서 “미국과 북한 모두 대화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해왔다.
애초 예상보다 이른 이번 한-미 정상회담 개최는 결국 돌파구 모색도 ‘톱다운 외교’ 방식으로 시동을 걸 수밖에 없다는 인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미 정상회담을 새달 11일 하루 진행되는 ‘실무공식방문’으로 잡은 것도 의전보다는 의제에 집중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아가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의지도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폼페이오 장관은 28일(현지시각) 싱크탱크인 ‘내셔널 리뷰 인터레스트’가 워싱턴에서 연 좌담회에서 김 위원장의 비핵화 약속을 언급하며 “나는 너무 멀지 않아 다음번(정상회담)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은 첫번째 임기 안에 3차 정상회담 개최를 원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문제는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어떤 카드를 만들어낼 것인가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북한과 미국 모두 또는 한쪽에 하노이에서 보인 각자의 입장에서 유연성을 발휘할 것을 설득해야 하는 처지다. 정부 관계자는 “(북-미 간 비핵화-관계정상화) 프로세스를 가속화하고, (양쪽이 취할 조처들을) 큰 덩어리로 만들어 속도를 내자는 게 우리 생각”이라고 말했다. 결국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이라는 기존 틀에서 논의를 진행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언급한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합의)을 위한 조합과 최선희 부상이 최근 언급한, 북한에 제재 완화를 해주되 비핵화를 이행하지 않으면 제재를 복원하는 ‘스냅백’ 방안도 논의될 수 있다.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문제도 논의 대상으로 꼽힌다. 영변 핵시설 폐기 외에 추가적 비핵화 조처 등 북쪽을 설득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도 협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한-미 동맹 강화도 이번 회담의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다. 하노이 회담 이후 한-미 동맹 균열설이 끊이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28일(현지시각) 백악관이 낸 이번 한-미 정상회담 개최 보도자료의 어휘 선택은 예사롭지 않다. 백악관은 “한-미 동맹은 한반도와 그 지역의 평화와 안전의 린치핀(핵심축)으로 남아 있다”며 “이번 방문은 이 동맹과 두 나라 사이의 우정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앞서 보수진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동맹을 두고 “린치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빈도가 줄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북한 문제에서 단단한 한-미 공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일각에서 제기되는 한-미 동맹 균열 논란을 불식하려는 백악관의 의도가 엿보인다.
북-미의 직접적 대화가 재개되기 전에 문 대통령이 움직이는 것인 만큼, 이번 한-미 정상회담 앞뒤로 남북 접촉이 이뤄질 개연성이 높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이 북한 최고인민회의 첫 회의(4월11일) 직후에 열리는 터라, 한-미 회담 전 남북 고위급 접촉을 통해 북한의 진의 파악과 정부의 설득 노력이 선행될 수 있다. 또 한-미 정상회담 뒤 남북 정상 간 ‘원포인트’ 회담을 열 수도 있다.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놓고 북한을 설득하겠다는 복안이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남북 간의 본격적인 논의는 전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김지은 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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