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10일 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열린 당 제7기 제4차 전원회의를 사회를 보는 도중 손가락질을 하며 뭔가를 얘기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조선노동당(노동당) 위원장이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토의·결정하겠다고 예고한 “새로운 투쟁 방향과 방도들”은 “자력갱생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겠다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위원장은 10일 평양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4차 회의에서 “제재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혈안이 돼 오판하는 적대세력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위원장은 그 수단으로 “자립적 민족경제에 토대해 자력갱생의 기치 높이 사회주의 건설을 더욱 줄기차게 전진시켜 나감”을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의 노선이 천만번 옳았다”는 말로, 지난해 4월20일 당 중앙위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사회주의경제건설 총력집중’(경제집중) 전략노선에 변화를 줄 생각이 없음을 강조했다. 통일부도 11일 “경제건설에 총력 집중하겠다는 기존 결정을 유지하겠다고 재확인한 것”이라 평가했다.
김 위원장의 이런 메시지는, 안으론 자력갱생을 동력으로 삼아 경제 성과를 이룩해 북한에는 제재가 먹히지 않음을 입증하자는 호소다. 밖으론 미국의 압박에 ‘군사 행동’으로 (당장) 맞대응하지는 않겠지만, 쉽사리 양보하지도 않겠다는 선긋기다. ‘장기전’ 태세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은 10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4차 전원회의에서 단상에 홀로 앉아 회의를 주재했다. 지난해 4월20일 열린 노동당 7기 3차 전원회의 때 최룡해·박봉주 등 다른 정치국 상무위원과 함께 단상에 앉은 전례에 비춰, 1년 사이 위상이 강화됐으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최근 진행된 조미수뇌(북미정상)회담의 기본 취지와 우리 당의 입장”을 밝히고는, 하노이 회담 합의 무산에 따른 제재 지속 상황에 대처할 방침으로 “자립적 민족경제”와 “자력갱생”을 수단으로 한 “사회주의 건설”을 제시했다. 하노이 회담과 관련한 김 위원장의 견해와 대응 방침을 북쪽 매체가 공개한 건 <노동신문> 11일치 1~2면 실린 이 회의 결과 보도가 처음이다. <노동신문>이 전한 김 위원장의 발언에는 미국 비판이나 군사 행동과 관련한 시사가 전혀 없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이후 처음이자 1년 만의 당 중앙위 전원회의의 소집 이유를 “자력갱생 기치로 자립적경제토대를 강화하며 사회주의 건설에 나서는 중요한 문제들을 토의 결정”으로 제시했다. 회의 보도에 담긴 김 위원장의 관심사는 온통 “경제, 경제, 경제”다. 5119자(1026단어)로 이뤄진 <노동신문>의 회의 보도에 ‘자력갱생’이 28차례 등장한다. ‘자립경제’가 5회, ‘자립적민족경제’ ‘인민경제’ ‘경제사업’이 각 2회다. ‘경제적 잠재력’ ‘경제건설목표’ ‘경제력’ ‘경제’가 각 1회 나온다. 요컨대 이번 회의의 열쇠말은, 김 위원장이 “자주적 발전과 번영의 보검”이라 규정한 “자력갱생”이다. 김 위원장은 ‘자력갱생 강화’를 “전원회의 기본의제로 제기한 당중앙의 의도를 똑똑히 인식”하라고 회의 참석자들한테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국가의 경제적 잠재력을 남김없이 발양”시키라며, 경제사업에서 실리·효율·절약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김 위원장은 “자력갱생과 자립적민족경제”를 “① 우리식 사회주의 존립의 기초 ② 전진과 발전의 동력 ③ 혁명의 존망을 좌우하는 영원한 생명선”으로 규정했다. 그러고는 “자력갱생 기치,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우리 당의 확고부동한 정치노선”이라고 재천명했다.
10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4차 전원회의에서 중앙위원들이 손을 들어 의안에 대한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사진 맨 앞줄 오른쪽부터 순서대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룡해 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 부위원장, 박봉주 내각 총리.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 위원장의 이런 ‘자력갱생’ 강조는 양면성을 지닌다. 북-미 협상, 남북관계와 관련해선 ‘군사 행동’을 언급하지 않아 정면 충돌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당장은 우려하지 않아도 되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반면 김 위원장이 ‘자력갱생’과 ‘자립경제’를 강조하는 그만큼 대외개방의 여지가 줄어든다는 부정적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북한 읽기에 밝은 전직 고위 관계자는 “당장은 군사적 리액션이 없으리라는 뜻이어서 일단은 다행”이라면서도 ”여전히 협상 전망은 불투명하다”고 짚었다. 실제 김 위원장의 자력갱생 강조는 그만큼 제재를 의식하는 정도가 크다는 반증이어서, 한-미 양국의 ‘제재 예외·완화·해제 카드’ 구사 여부에 따라 정세의 진로가 달라질 전망이다.
이제훈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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