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에 참석했다. <조선중앙텔레비전>은 13일 오후 김 위원장이 시정연설을 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회의 시정연설에서 한-미 연합훈련 재개를 “불쾌하게 생각한다”고 밝혀 한-미 연합훈련이 9·19 군사합의 이행 등 향후 남북관계에 끼칠 영향이 주목된다. 김 위원장은 앞부분에서 “남조선 당국과 손잡고 평화·공동번영의 민족사를 써나가려는 결심은 확고부동하다”고 강조했지만, 9·19 군사합의 이행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한-미 연합훈련 재개를 ‘허울만 바꿔 쓴 은폐된 적대행위’라고 규정했다. “미국과 함께 허울만 바꿔 쓰고 이미 중단하게 된 합동군사연습까지 다시 강행하면서 은폐된 적대행위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남조선 군부 호전세력의 무분별한 책동“이라는 것이다. 한-미는 최근 지휘소연습인 ‘키리졸브 연습’과 기동훈련인 ‘독수리 훈련’을 종료하고, 대대급 이하 연합훈련은 연중 실시하되, 연대급 이상 훈련은 각자가 단독으로 진행하는 방식으로 한-미 연합훈련을 조정했다. 김 위원장은 “이를 그대로 두고선… 북남관계에서의 진전이나 평화번영의 그 어떤 결실도 기대할수 없다는 것을 때늦기 전에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미국에서는 우리의 대륙간탄도로케트 요격을 가상한 시험이 진행되고 미국 대통령이 직접 중지를 공약한 군사연습들이 재개되는 등 6·12 조-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역행하는 적대적 움직임들이 노골화되고 있다”며 “나는 이러한 흐름을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바람이 불면 파도가 일기 마련이듯이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이 노골화될수록 그에 화답하는 우리의 행동도 따라서게 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불쾌감이 계속 쌓이면 행동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김 위원장의 한-미 연합훈련 비판은 올해 신년사에서 “북과 남이 평화번영의 길로 나가기로 확약한 이상 조선반도 정세 긴장의 근원으로 되고 있는 외세와의 합동군사연습을 더이상 허용하지 말아야 하며 외부로부터의 전략자산을 비롯한 전쟁장비 반입도 완전히 중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라고 밝힌 것과 통한다. 신년사에서 ‘우리의 주장’이라는 형식을 통해 자제를 촉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불쾌감’을 표시한 것이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이 명시적으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하지 않은 것은 여전히 ‘인내의 여지’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9·19 군사합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해 우리가 3차에 걸쳐 역사적인 북남수뇌상봉과 회담들을 진행하고 북남선언들을 채택하여 북남관계에서 극적인 전환을 가져온 것은 각일각 전쟁의 문어구로 다가서는 엄중한 정세를 돌려세우고 조국통일을 위한 새로운 여정의 출발을 선언한 대단히 의미가 큰 사변이였다”며 ‘북남선언들’ 속에 집어넣었을 뿐이다. 김 위원장은 이어 “지금 온 민족은 력사적인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이 철저히 이행되어 조선반도의 평화적 분위기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북남관계가 끊임없이 개선되여 나가기를 절절히 바라고 있다”고 밝혔지만, 역시 9·19 군사합의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조선반도에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시대를 열어놓으려는 확고한 결심과 의지를 담아 채택된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북남군사분야 합의서는 북남사이의 무력에 의한 동족상쟁을 종식시킬 것을 확약한 사실상의 불가침선언으로서 참으로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며 9·19 군사합의를 판문점선언, 평양공동선언과 함께 적시하고, 적극적으로 평가한 것과 대비된다. 김 위원장은 당시 “북남 사이의 군사적 적대관계를 근원적으로 청산하고 조선반도를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지도로 만들려는 것은 우리의 확고부동한 의지”라며 “북과 남은 이미 합의한 데로 대치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관계 해소를 지상과 공중, 해상을 비롯한 조선반도 전역에로 이어놓기 위한 실천적 조치들을 적극 취해 나가야 한다”고 이행 의지를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9·19 군사합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음에 따라 올 들어 급격히 속도가 떨어지고 있는 이행 전망이 더욱 불투명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북은 애초 이달부터 비무장지대 화살머리고지에서 공동 유해발굴에 착수하고, 한강(임진강) 하구에서 민간 선박의 항행을 허용하기로 했으나, 남쪽 단독으로 기초적인 유해 발굴작업에만 들어간 상태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의 민간인 자유왕래, 남북 군사공동위원회 구성 역시 해를 넘긴 채 공전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제3차 북-미 정상회담 용의를 밝히며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고 한 점에 비춰, 북-미 정상회담에서 돌파구가 열리지 않는 한 9·19 군사합의 이행이 속도를 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전직 외교관은 “남북관계 진전이 북-미 협상을 견인하는 구조로 복귀할 수 있도록 대안적 접근을 더욱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남쪽의 전력 증강에 대한 북쪽의 비판 수위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 위원장이 시정연설을 한 날 <조선중앙통신>은 남쪽의 스텔스 전투기 F-35A 도입과 추가 반입에 대해 “조선반도 정세를 긴장 격화로 몰아가는 엄중한 도발행위”라고 비판했다. 통신은 이날 ‘전쟁장비 반입은 동족에 대한 노골적인 부정이며 위협공갈’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이렇게 밝히고 “첨단 살육수단들의 반입으로 조선반도 정세가 뜻하지 않게 긴장 격화로 줄달음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유강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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