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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남북분계선 넘어 첫발…멀지만 쉼없이 걸어온 ‘평화의 길’

등록 2019-04-24 20:44수정 2019-04-24 21:52

그날 이후 서울과 평양의 시간 맞춰 ‘작은 통일’
군사분계선에선 확성기 철거 ‘말의 전쟁’ 사라져
한반도 평화를 향한 남북의 거대한 여정 출발
이산가족 상봉 확대·개성공단 재개 등에선 진전 없어
“그날의 감동과 열정 기억하자” 희망 잇기 나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나 인사한 뒤 함께 북쪽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남쪽으로 넘어오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나 인사한 뒤 함께 북쪽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남쪽으로 넘어오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화와 번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한결같은 지향을 담아 한반도에서 역사적인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뜻깊은 시기에 2018년 4월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하였다.”

한반도에 다시 봄이 찾아왔음을 세상에 알린 ‘4·27 판문점 선언’은 이렇게 시작한다. 냉전의 산물인 정전체제가 탄생한 판문점은 이날 이후 민족의 화해와 평화의 문을 연 전환점이 됐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고,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도보다리를 산책하고, 나란히 서서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들이 하나하나 모여 새로운 남북 합작의 시대를 예고했다.

그날 ‘작은 통일’의 씨앗이 뿌려졌다. 평화의 집에 걸린 두개의 시계가 30분 차이로 서로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는 걸 본 김 위원장이 “시간부터 먼저 통일하자”고 제안했다. “이건 같은 표준시를 쓰던 우리 쪽이 바꾼 것이니 우리가 원래대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다. 사흘 뒤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정령을 통해 5월5일부터 평양 표준시를 30분 앞당긴다고 선포했다. 지금 서울과 평양, 부산과 신의주의 시계는 같은 시각을 가리키고 있다.

군사분계선에도 화해의 바람이 불었다. 두 정상은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선언하고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다짐했다. 나흘 뒤 경기도 파주 전방부대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가 철거됐다. 북쪽에서도 대남 확성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군사분계선을 넘나들었던 ‘말의 전쟁’은 이제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들도 다시 오가기 시작했다. “민족적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고조시켜나가기 위하여 각계각층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을 활성화하기로 하였다”는 약속에 따라 이를 보장하기 위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9월14일 개성공단에 들어섰다. 체육·철도·도로·산림 등 분야별 회담과 교류가 줄기차게 이어졌다. 판문점 선언 뒤 8월 말까지 넉달 동안 민간인 1418명이 북쪽으로 올라갔다. 2017년 같은 기간에는 방북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

판문점 선언은 한반도 냉전 해체를 향한 거대한 여정의 출발점이었다.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남북의 합의는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북-미는 새로운 관계 수립,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대원칙에 서명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9월19일 평양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했고, 이는 올해 2월27~28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남북은 9·19 군사합의에 따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비무장지대(DMZ) 평화지대화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봄과 여름, 대규모 한-미 연합군사훈련 실시 때마다 불거졌던 ‘한반도 위기설’도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그러나 길은 더 멀리 이어지지 못했다. 제재 해제와 비핵화 조처를 놓고 공방을 벌이던 북-미가 결국 하노이에서 합의에 실패하면서 먹구름에 휩싸였다. 남북은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현대화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을 취해나가기로” 합의했으나, 12월26일 착공식을 여는 데 그쳤다. “민족 분단으로 발생된 인도적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자고 했지만, 8월20~26일 금강산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 이후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개성공단 재개도 여전히 눈에 잡히지 않는다. 철수 뒤 방치된 시설을 점검하기 위한 기업인들의 방북조차 실현되지 않고 있다.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은 “개성공단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개설되는 걸 보고 희망을 품었으나, 이제는 더는 버티기 힘들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미국은 제재 유지를 외치고, 북쪽은 남쪽의 의지가 부족하다고 타박을 놓는다.

문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에 서명한 뒤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결코 뒤돌아 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옆에는 김 위원장이 상기된 표정으로 서 있었다. 27일 14시27분 비무장지대 500㎞를 인간띠로 잇는 행사에 가족과 함께 참여할 생각이라는 정소진(61)씨는 “남북이 어려운 때일수록 판문점 선언의 감동과 열정을 되새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강문 선임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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