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1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T2)과 소회의실(T3) 사이로 군사분계선이 보인다. 이곳은 4·27 남북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난 곳이기도 하다. 노지원 기자
군사분계선 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 소회의실의 하늘색 페인트가 튼살처럼 일어나고 벗겨진 모습이 6개월 전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1일 찾아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공기는 분명 이전과 달랐다.
지난해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비무장화’ 조처를 진행한 6개월 동안 문을 닫았다가 이날 처음 공개된 공동경비구역에서 방문객을 안내한 군인들 몸에선 ‘무기’가 사라졌다. 방탄헬멧도 쓰지 않았다. “과거(비무장화 조치 이전)에는 35명을 훨씬 넘는 군인들이 (실탄이 들어있는) 권총을 휴대한 채로 경비 근무를 섰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딱 35명입니다. 더이상 총을 휴대하지도 않습니다.” 취재진을 안내한 군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무기를 내려놓은 남북 군인들
남과 북, 유엔군사령부는 9·19 군사분야 합의서 2조2항에 따라 지난 10월 공동경비구역의 비무장화 조처를 마쳤고 11월엔 3자 공동검증까지 끝냈다. 공동경비구역 남북 지역 곳곳에 묻혀 있던 지뢰를 파냈다. 군인들 몸에 장착하고 있던 무기를 내려놨고, 남과 북의 초소에 쌓여있던 화기도 철수했다. 이날 판문점에서는 북쪽 초소가 ‘봉인’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건물 자체는 그대로 있었지만, 창문에는 ‘이곳을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다’는 표시의 하얀 종이가 발라져 있었다.
조만간 판문점에서 근무하는 남쪽 군인들은 팔에 ‘민사경찰’이라 적힌 띠를 두를 예정이다. 군 관계자는 “이미 띠 디자인은 완료됐고 현재 제작 중에 있다”고 말했다. 북쪽 군인들은 이미 띠를 제작해 착용하고 있다.
이날 통일부와 국정원을 통해 신청한 방문객 320여명이 새 단장한 판문점을 둘러봤다. 오전 10시께에는 북쪽 군인 3명이 군사분계선 앞까지 다가와 남쪽 취재진과 시민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돌아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북쪽에서 관광객 10여명이 판문각과 자유의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100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중국인 등 관광객 무리가 판문각에 우르르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2019년 5월1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분계선 너머로 남쪽 취재진과 방문객을 살펴보는 북쪽 군인의 모습이 보인다. 노지원 기자
2019년 5월1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있는 4·27 남북정상회담 기념식수. 노지원 기자
시민들도 도보다리 산책한다
군사분계선 너머 판문각이 보이는 남쪽 자유의집 앞마당에서 오른쪽으로 열발자국을 걸어 나간다. 그러면 바로 왼쪽에 지난해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함께 심은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고 새겨진 표지석도 함께 보인다. 한 살짜리 소나무는 아직 어리다. 아직은 지지대의 힘을 빌어 버티고 서있지만, 봄의 생기를 받고 있다.
기념식수를 지나 조금 더 가면 티(T)자 모양의 파란색 다리가 나온다. ‘도보다리’다. 초록빛 나무와 풀이 우거진 위로 다리가 앉아있다. 1년 전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새들의 지저귐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이 다리 한켠에 마련된 탁자에 앉아 30분 넘게 ‘밀담’을 나누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이날 취재진이 찾은 도보다리는 방문객의 안전을 위해 보수 공사 중이었다. 공사가 마무리되고 나면 판문점을 방문하는 모든 시민들이 도보다리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두 정상이 앉은 자리를 배경으로 사진촬영도 가능하다. 유엔사 관계자는 “다리가 나무로 돼 있기 때문에 힘이 좀 약할 수 있는데, 휠체어를 탄 방문객 등도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공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9년 5월1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도보다리 모습. 노지원 기자
2019년 5월1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도보다리 모습. 군인이 서 있는 뒤쪽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개밀담’을 나눈 자리다. 노지원 기자
소개 영상엔 ‘70년 적대’ 대신 남-북-미 정상 함께 등장
실제 공동경비구역을 방문하는 시민들이 본격적으로 판문점을 둘러보기 전 가장 먼저 보게 되는 13분짜리 영상이 있다. 지난 9월 군사합의서 체결 뒤 유엔사과 공동경비구역 경비대대가 함께 새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날 취재진이 직접 본 영상에는 한반도에 평화 바람이 분 지난 2018년이 담겨 있었다. 지난해 2월 평창겨울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한 북쪽 대표단과 문재인 대통령 부부, 그리고 미국 대표단의 모습이 한 장면에 담겼다. 4·27 남북 정상회담 당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함께 도보다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 그리고 두달 뒤 싱가포르에서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처음 만나는 모습이 차례로 나왔다.
“한 번의 만남으로 오랜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불신을 해소할 순 없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한국의 속담처럼 희망을 품어본다”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9월 평양 정상회담과 문 대통령이 5·1경기장에서 15만 평양 시민 앞에서 “비핵화”를 말하는 모습, 그리고 남북이 군사합의서에 서명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비무장화 된 공동경비구역의 새 소개 영상은 군사합의를 “작지만 의미있는 합의”라고 하면서 ‘적대’ 대신 ‘평화’를 말했다.
2019년 5월1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있는 북쪽 초소. 창문은 봉인됐고, 초소에서는 화기와 경비인원이 모두 철수했다. 노지원 기자
2019년 5월1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남쪽 지역에 있는 북쪽 초소 모습. 아직 남-북-유엔사의 공동근무수칙이 완성되지 않아 북쪽 인원이 근무할 예정인 이 초소는 비어있다. 노지원 기자
2019년 5월1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인 옆으로 보이는 표지판이 군사분계선을 의미한다. 노지원 기자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군사분계선을 표시하기 위해 땅에 박아놓은 말뚝은 그대로 있다. 빨갛게 녹이 슬어 ‘군사분계선’이라는 글자가 보이지 않는 표지판도 여전하다. 애초 9·19 남북 군사합의서대로라면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 뒤 남북 간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해야 하지만, 아직 남-북-유엔사가 공동근무수칙을 마무리짓지 못해 합의 이행이 늦어지고 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무장한 군인들이 긴장감을 조성했던 판문점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션 모로우 유엔사 경비대대장(미 육군 중령)은 이날 취재진을 만나 “과거에는 긴장의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평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1일부터 한 달 동안은 통일부, 국가정보원 등에 신청한 단체 인원이 하루 네팀씩 시범 견학을 하고 6월부터는 여행사를 통한 외국인 관광객까지도 관광이 가능해 하루 여덟 팀이 견학할 수 있다.
판문점/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2019년 5월1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T2)과 소회의실(T3) 사이로 군사분계선이 보인다. 그 너머에 북쪽 판문각이 보인다. 북쪽에서 온 관광객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있다. 노지원 기자
2019년 5월1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찾은 방문객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노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