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시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지난 17일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의 모습. 북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지난 5개월간 북한 전 지역의 평균 강수량이 1917년 이후 10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파주/AFP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17일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의 방북을 승인하고 국제기구의 대북 인도지원 사업에 800만달러 공여를 추진하기로 밝히면서 눈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선택에 쏠리고 있다. 한-미 공조를 이유로 미뤘던 문재인 대통령의 ‘성의 표시’가 냉담한 북쪽과 대화를 재개하는 마중물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정부 안팎에서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 193명의 방북 승인에 대한 북쪽의 반응에 특히 촉각을 세우는 모양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합의 무산 뒤 남북 및 북-미 관계가 ‘올스톱’된 상황에서 당면한 남북관계의 풍향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18일 “계속 관련 협의를 해왔다”면서도 17일 승인 결정 발표 뒤 북쪽과 별도의 협의는 없었다고 전했다.
북쪽이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문을 받을 명분은 충분히 있다. 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단을) 재개할 용의”를 밝힌 바 있다. 북쪽 매체들은 하노이 정상회담 합의 무산 뒤에도 줄곧 개성공단 재개를 주장해왔다. 기업인들의 방문이 개성공단의 잠재적 재개를 위한 초보적 조처로 볼 수 있다는 측면도 북쪽으로서는 긍정적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결국 관건은 ‘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북한은 남북관계를 북-미 관계와 함께 고려해왔다. 현재의 북-미 교착국면에 일정 정도 돌파구 조짐이 보이거나, 북한이 북-미 대화에 다시 나서겠다는 전략적 결정을 해야 남쪽과도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북-미 관계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조윤제 주미대사는 17일(현지시각)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에서 “북-미 대화에 있어 아직 특별한 진전은 없는 것 같다”며 “미국은 계속 북쪽에 대화 재개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고, 북쪽에서는 아직 답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도 18일 “(미국이) 조선의 일방적 핵무장 해제를 노린 ‘선 핵포기’ 요구를 고집한 것으로 하여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조선은 미국이 자기의 요구만을 들이먹이려고 하는 오만한 대화법을 그만두어야 협상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남북 소장회의가 2월22일 열린 뒤 지난 17일까지 12주째 불발한 상황도 북-미 관계의 답보 상태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지금은 (북쪽이) 북-미와 남북을 묶어 공세적으로 배수진을 치는 자세를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며 “남북의 독자 공간을 만들겠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보내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대북 인도지원과 관련해선 문재인 정부가 세계식량계획(WFP)과 유니세프를 통한 공여 방식을 택함으로써, 800만달러어치의 인도지원 물품은 큰 변수가 없는 한 북쪽에 전달될 전망이다. 정부가 직접 제공한다면 2008년 북쪽의 ‘옥수수 5만톤 지원’ 거부 때처럼 정세 판단에 따른 변수도 있을 수 있지만, 식량난에 가뭄까지 겹친 상황에서 북쪽이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까지 거부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두 기구의 대북 지원 과정에서 남북 접촉은 요구되지 않는다. 다만 정부가 800만달러 공여와 별개로 추가 대북 인도적 식량지원 가능성을 열어둬, 이를 계기로 북쪽과 물꼬 트기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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