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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북 장사정포 후방배치 카드로 북핵·남북관계 교착 풀어야”

등록 2019-05-27 10:37수정 2019-05-27 10:43

부형욱 KIDA 연구위원 제안

비핵화·재래식 군비통제 병행 주장
“국내 미국인 상당수 수도권 거주해
북한 자발적 장사정포 위협 거둔다면
트럼프에게도 상당한 정치적 업적”

김영준 국방대 교수는 “9·19 군사합의
MB·박근혜 정부 때 내용도 포함된 것”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미 관계, 남북관계 교착국면을 타개할 방안으로 수도권을 겨냥한 북한 장사정포 후방배치 제안이 나왔다.

부형욱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최근 서울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북핵 협상 교착국면을 풀기 위해서라도 군비통제가 선도적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부형욱 연구위원은 “북한 쪽이 제공할 수 있는 정치적 임팩트가 있는 대안은 한반도 서부지역 장사정포의 후방배치이고 수도권을 겨냥한 170㎜, 240㎜ 방사포를 사거리 밖으로 이동시키면 ‘서울 불바다’ 우려를 극적으로 저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부 연구위원은 서부지역 북한 장사정포를 40㎞ 이상 후방배치해 수도권 지역에 대한 위협을 줄이고 동부지역 북한 장사정포는 현 위치를 유지(추후 이전 논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인구가 많고 주요 시설이 몰린 수도권에 대한 위협을 먼저 해소하자는 것이다. 그는 서쪽을 물리고 동쪽을 유지할 경우 모양이 ‘태극’과 비슷해져 ‘태극형 배치 조정’이라고 이름 지었다.

핵, 미사일과 함께 장사정포는 북한의 3대 위협 전력으로 꼽힌다. 대포의 사거리는 대개 20㎞ 안팎이다. 장사정포는 사거리가 길다는 뜻이다. 평양은 군사분계선에서 180㎞ 거리인데 수도권은 60㎞ 떨어져 있다. 군사분계선 근처에서 북한은 대포로 서울을 공격할 수 있지만 남한은 평양을 대포로 공격하긴 어렵다.

북한이 전방에 배치한 사거리 54㎞인 170㎜ 자주포(전차와 비슷하게 장갑차량 위에 포신 탑재) 6개 대대와 사거리 60㎞인 240㎜ 방사포(수십 발의 로켓탄을 동시다발적으로 쏘는 다연장로켓) 330문이 수도권을 겨냥하고 있다고 군 당국은 파악한다. 유사시 북한이 한꺼번에 장사정포를 쏘면 서울과 경기도 남부 지역까지 포탄이 비 오듯 쏟아질 수 있다. 북한은 남북관계가 악화할 때면 ‘휴전선에서 서울이 멀지 않다.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된다’고 위협하곤 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북한 장사정포 후방배치를 남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에 획기적 전환점이자 상징적, 실질적 조처로 평가하고 있다. 부 연구위원은 “수도권은 국제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지역이며 이 지역에 체류하는 미국민도 상당한 만큼 북한이 자발적으로 수도권에 대한 장사정포 위협을 거둔다면 (자국민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도 상당한 정치적 업적이 된다”고 말했다. 국내 거주 미국인은 5만1875명(2016년 기준)이고 상당수는 수도권에 산다.

정부는 북한 장사정포 후방배치 논의에 신중한 태도다. 북한이 장사정포를 후방으로 물리게 되면 우리에게도 사거리 40㎞인 K9 자주포 등의 후방배치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해 9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북한 장사정포가 후방배치되면 상호주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며 “좋은 생각이지만 접근 자체는 신중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이 휴전선 일대 포병 전력을 후방으로 물릴 경우 평양보다 서울이 휴전선에 훨씬 가까이 있어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부 연구위원은 북한 장사정포 후방배치는 “북한이 비무장지대로부터 자신들이 전력을 후퇴시키는 거리만큼 상응 조처로 한국군도 후퇴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 조건이어야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이 군사분계선에 너무 가까워 국군은 더 이상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북한의 양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2010년 12월1일 국방부가 공개한 북한군 방사포대의 모습. 국방부 제공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2010년 12월1일 국방부가 공개한 북한군 방사포대의 모습. 국방부 제공
그는 장사정포 후방배치가 북한의 큰 양보를 전제로 한 것이라 현실성이 없다는 반론이 있지만, 1990년대 북한군이 의도하였던 장사정포를 활용한 ‘서울 불바다’란 비대칭은 핵무기를 완성한 현시점에서 전략적 효용성이 떨어지므로 일정한 정치적 조건 아래서는 북한이 양보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미국이 △포괄적이고 단계적인 비핵화 방안을 수용하고 △종전선언을 하며 △제재의 일부 해제를 단행하고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며 △한-미 연합연습을 잠정 중단한다면 북한이 수락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부형욱 연구위원은 한반도에서는 비핵화와 재래식 군비통제 병행 방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군비통제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냉전 때 유럽의 군사적 긴장 완화는 중거리핵전력감축조약(INF)-냉전 종식-재래식전력감축조약(CFE) 순서로 진행됐다. 유럽은 ‘선 핵문제 타결, 후 재래식 군비통제’ 방식이었지만, 한반도에 핵 협상 타결-정치적 변화-재래식 전력 군비통제로 이어지는 절차를 적용하기에는 북한의 안보 우려가 너무 크기 때문에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남북 군사적 긴장 고조가 ‘우발전쟁’을 촉발할 수 있기 때문에 과도한 남북 군사대치란 ‘압력밥솥에서 김을 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9·19 남북 군사합의의 본질은 남북 간에 유지하고 있는 과잉억제 상태를 일정 부분 감소시키고 상호간 취약성을 유지하자는 합의조치로, 우리만 양보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9·19 남북 군사합의서에 대해 일부 예비역 장성들은 ‘무장해제 이적 행위’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김영준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 교수는 같은 세미나에서 “9·19 군사합의는 진보정부가 급진좌파 이상주의 정책에 기반해 만든 새로운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지난 정부(이명박·박근혜 정부) 동안 계속 발전된 내용을 구현하는 게 9·19 군사합의”라며 “군사합의는 오랫동안 ‘이런 방안들이 구현되면 좋겠다’고 한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온 게 구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해 9월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군사 분야 합의서 서명식에서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앞줄 왼쪽)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이 합의서를 펼쳐 보이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해 9월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군사 분야 합의서 서명식에서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앞줄 왼쪽)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이 합의서를 펼쳐 보이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김 교수는 “9·19 합의는 북한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우리 군의 전력과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것도 아니고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는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기존 대북 전략옵션 가운데 무력공격과 제재, 북한 붕괴론 전략이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증대와 한반도 위기 고조만을 불러왔다. 9·19 군사합의는 새로운 대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핵심 지원 수단”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9·19 합의를 ‘국군의 정치화’라고 비난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등은 “군은 양보하는 입장을 가지면 안 된다. 정치권에서 평화를 이야기해도 군은 먼저 (GP 등을) 없애자고 하거나 하면 안 된다. 군은 정부 및 국방부의 입장과도 달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교수는 “군이 선출된 정부가 추진하는 전략에는 보조를 맞춰야 한다”며 “남북 군사합의는 비핵화와 함께 필요할 때는 한반도 평화를 주도하는 핵심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동서 냉전 때) 미국 펜타곤(국방부)에서 소련과의 군비통제를 추진한 미군을 정치에 굴종한 앞잡이라고 하지 않았다”며 “전문직업군이기 때문에 선거로 당선된 정부를 뒷받침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 군비통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정권도 모두 공화당이다. 닉슨 전 대통령이 군비통제를 추진했다고 ‘좌파’라고 비난받았느냐. 보편적인 관점에서 군비통제에 대한 오해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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