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오른쪽) 중국 총리가 23일(현지시각) 베이징을 방문한 헝 스위 킷 싱가포르 부총리 겸 재무장관을 만나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이 커지는 가운데 31일부터 아시아·태평양 주요 나라 국방장관들이 참석하는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가 싱가포르에서 열린다. 연합뉴스
아시아·태평양과 유럽 주요 나라의 국방부 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가 31일 싱가포르에서 개막한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주관으로 다음달 2일까지 열리는 이번 회의에서는 최근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한반도 안보 정세와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으로 인한 남중국해 긴장 등 역내 안보 현안들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회의에는 이도훈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가나스기 겐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등 한·미·일의 북핵 협상 수석대표들도 참석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공조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국방·안보 분야의 사령탑이 모이는 자리에 비핵화 협상을 진행하는 외교 당국자들이 참석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번 회의에는 정경두 국방장관과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장관 대행, 웨이펑허 중국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 등 한·미·중·일 국방장관이 모두 참석한다. 정 장관은 ‘한반도 안보와 다음 단계'라는 제목의 연설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의 새 질서인 '신한반도체제'를 소개할 예정이다. 국방부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 및 남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을 설명하고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당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장관은 한·미·일 3자 회담을 비롯해 중국, 일본과 각각 양자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한·미·일 3자 회담에선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상황 관리와 비핵화 협상 재개를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협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는 양자회담 일정을 순조롭게 확정했으나, 일본과는 ‘초계기-레이더’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성사 여부가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최근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이 “한국과 원래 관계로 되돌아가고 싶다”며 관계 회복 의지를 적극 피력했으나,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우익 지지층을 묶어두려는 정치권의 계산이 개입하면서 기류가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일본과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며 “싱가포르 현지에서도 계속 협의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정식 회담 대신 회동 형식으로 양자가 만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과의 양자회담에선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갈등 완화 이후 군사 분야 협력을 내실 있게 추진하는 방안이 협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샹그릴라 대화에선 남중국해에 대한 접근을 거부하는 중국과, 자유항행 원칙을 고수하는 미국의 날카로운 공방이 예상된다. 섀너핸 대행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을 설파하면서 중국을 압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웨이펑허 국방부장은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미국에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이 회의에 최고위급 인사를 파견하는 것은 2011년 이후 8년 만이다.
일각에선 이번 샹그릴라 대화가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전략경쟁 사이에서 역내 국가들이 선택을 강요받는 자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은 ‘항행과 비행의 자유’를 지지하면서도 ‘국제법 원칙에 따른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섀너핸 대행은 회의를 마친 뒤 한국과 일본을 각각 방문할 예정이다. 국방부는 “섀녀핸 대행이 3일 서울을 방문해 한반도 안보 상황과 관련한 공조 방안을 비롯해 한·미 연합훈련 조정,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 다양한 동맹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강문 선임기자
m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