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북한 주민 4명이 탄 어선이 군경의 제지를 받지 않고 삼척항에 들어왔다. 북한 주민들은 근처를 산책하던 우리 주민들과 대화까지 했다. 한국방송 제공/연합뉴스
지난 15일 강원도 삼척항에서 발견된 북한 어선은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삼척항에 들어올 때까지 57시간 넘게 군경의 경계·감시망에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19일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경계작전 실태를 꼼꼼하게 되짚어보고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다면 엄중하게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당국의 말을 종합하면, 북한 어선은 지난 9일 함경북도에서 출항해 10일 동해 북방한계선 북쪽에서 조업하던 북한 어선군에 합류했다. 이어 11~12일 다른 어선들과 함께 조업하다 12일 저녁 9시께 북방한계선을 넘었다. 북한 어선은 13일 아침 6시께 울릉도 동북쪽 55㎞ 해상에서 정지해 있다가 저녁 8시께 육지 방향으로 항해를 시작했으나 14일 저녁 9시께 삼척 동쪽 4~5㎞ 해상에서 다시 멈췄다. 북한 어선은 15일 해가 뜨자 삼척항으로 출발해 아침 6시20분께 방파제 인근 부두 끝부분에 접안했다.
군경은 북한 어선의 이런 동태를 포착하지 못했다. 동해상에 멈춰 있을 때 미세한 흔적이 해안 감시 레이더에 잡혔으나 감시 요원들은 파도로 인한 반사파로 판단했다. 삼척항에 접안하는 모습이 영상감시체계에 포착되고 폐회로텔레비전에도 찍혔지만 이번에는 조업 활동을 마치고 귀항하는 우리 어선으로 판단한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 어선이 동해에서 움직이는 동안 북방한계선 부근에선 경비함 여러 척이 해상 초계기와 함께 경계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군 관계자는 “북한 어선들의 오징어 조업이 늘어난 5월 말 이후 이들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오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 경계작전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군이 평소보다 경계작전을 강화했는데도 북한 어선을 식별하지 못한 셈이다.
북한 어선은 15일 아침 6시50분께 산책을 나온 주민에게 발견됐다. 이 주민은 “북한 말투를 쓰는 수상한 사람이 있다”며 112로 신고했다. 이 주민은 북한 어선에 타고 있던 이들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고 이들은 “북한에서 왔다”고 답변했다. 특히 이들 가운데 1명은 “서울에 사는 이모와 통화하고 싶다”며 “휴대전화를 빌려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출동한 해경에게 “바다에서 배를 수리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어선에는 4명이 타고 있었으나, 2명은 남쪽에 남고 2명은 18일 판문점을 통해 돌아갔다. 국가정보원은 이와 관련해 “2명은 귀순 의사가 있었고, 나머지 2명은 휩쓸려 내려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고 국회 정보위원장인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이 전했다. 국정원은 “한 사람은 가정불화를 이유로 귀순 의사를 밝혔고, 다른 한 사람은 한국 영화를 시청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처벌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어선의 위성항법장치(GPS)를 분석한 결과, 이들이 어로 활동을 했던 것은 맞는 것 같다”며 “낡은 전투복 상의를 입은 이가 있으나 체격이나 근육 상태를 봤을 때 전투훈련을 받은 적은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유강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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