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8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 바커 필드에서 열린 한미연합사령관 이취임식에서 빈센트 브룩스 대장이 전달한 연합사 깃발을 신임 로버트 에이브럼스 사령관에게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이 최근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이 한국군으로 넘어간 이후에도 한반도 위기 관리에 정전협정 유지 임무를 맡고 있는 유엔군사령부(유엔사)가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3일 알려졌다. 전작권 전환에 따라 한국군 대장이 사령관을 맡는 미래연합사가 들어서더라도 미국이 유엔사를 통해 사실상 한국군을 통제하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부와 군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미국은 지난달 11~20일 실시한 한-미 연합 지휘소연습 과정에서 전작권 전환 이후 한반도 위기 관리에 유엔사가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평시 한반도 위기 관리는 한국 합참과 연합사가 공동으로 하고 있는데, 전작권 전환 이후 한국군 대장이 사령관을 맡는 미래연합사가 들어서면 유엔사가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사령관을 줄곧 겸해왔다는 점에서 미래연합사 구조에서도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미국은 특히 국지적인 도발 등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이 발발하더라도 정전협정의 틀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전협정 틀 안에서 유엔사의 교전수칙 등 지휘가 한국군을 대상으로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런 주장에는 한반도 위기 상황이 전면전으로 발전해 원하지 않는 전쟁에 뛰어들게 되는 것을 피하려는 계산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번 한-미 연합 지휘소연습은 전면전이 아니라 일정 부분 정전협정이 유지된 상태를 상정하고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이런 주장은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정전체제 유지를 명분으로 유엔사의 역할을 확대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수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미국이 한반도를 정전체제의 틀 안에서 관리하겠다는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평화체제 구축 방향과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주장대로 유엔사의 역할이 확대되면 전작권 전환의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엔사의 정전체제 관리 틀에 묶여 한국군의 작전권이 제약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엔사는 현재 정전협정 관리 및 유지를 임무로 하고 있으며, 전시에는 회원국으로부터 전력을 제공받아 한미연합사령부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정부 소식통은 “미국의 논리는 전작권 전환 이후 미래연합사와 유엔사를 분리하려는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한반도 전쟁 상황에서 유엔군 전력에 대한 지휘권은 유엔사를 통해 미국이 갖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으로선 한국군 대장의 지휘를 받는 미래연합사에 의존하지 않고 유엔사를 통해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정전체제의 틀 안에서 유엔사가 한국군을 통제할 경우 권한의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전작권이 한국군으로 전환된 이후 국지 도발 등 위기 사태가 발생했을 때 유엔사령관이 유엔사 교전수칙을 근거로 한국군의 작전을 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엔사의 교전수칙은 확전 가능성과 위기 고조 등을 정확히 따져 ‘비례성 원칙’으로 구성돼 있으나, 한국군의 교전수칙은 도발 수준에 따라 그 3∼4배로 응징할 수 있는 등 ‘비례성 원칙’에 구애받지 않는다.
미국의 이런 입장은 2014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이른바 ‘유엔사 재활성화’ 프로그램과도 맥이 닿아 있다. 미국은 최근 부사령관 등 핵심 참모를 다국적으로 편성하는 등 유엔사의 실질적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유엔사 소속이 아닌 독일군 장교를 유엔사에 파견하는 방안을 독일과 협의해 한국 쪽에 통보했다가 한국의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다. 최근 발간한 ‘주한미군 2019 전략 다이제스트’에서 일본을 통한 협력을 강화한다고 밝혀 일본을 유엔사의 전력제공국에 참여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논란을 촉발하기도 했다.
유엔사 강화 움직임은 향후 한-미 간 협의에서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는 지난해 10월 말 제50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한국 합참-유엔사-연합사 간 관계 관련 약정(TOR)에 합의했다. 당시 국방부는 “한·미 국방부는 한반도에서 무력분쟁을 예방하는 역할을 수행해온 유엔군사령부를 지속 유지하고 지원하며 한국 합참, 연합군사령부, 주한미군사령부, 유엔군사령부 간의 상호관계를 발전시킨다”고 설명했다.
유강문 선임기자,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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