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이 5일 오전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9 서울안보대화’ 개회식에 참석해 정경두 국방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서울안보대화에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연합뉴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5일 “자국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기 위한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심화되고 있다“며 “최근 한반도 주변에서는 이웃 국가와 안보 갈등을 조장해 자국 이익을 추구하려는 우려스러운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가)에서 배제하는 등 한-일 갈등을 자극하는 일본의 움직임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정 장관은 이날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9 서울안보대화(SDD)’ 개회사를 통해 이렇게 밝히고, 문재인 정부 들어 성사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남북미 정상회동, 9·19군사합의 등을 거론하며 “대한민국은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을 향한 담대한 여정을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1950년 6·25전쟁 이후 70여년 간 지속해온 남북의 군사적 대결과 긴장의 세월을 하루아침에 극복할 수는 없다”며 “최근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 등을 발사하며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등 여전히 우리 앞에는 많은 난관이 놓여 있다”고 덧붙였다.
정 장관은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신중하게 상호신뢰를 쌓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안보전략은 ‘힘을 통한 평화”라고 강조했다. 그는 “강한 힘이 있을 때 평화를 지킬 수 있고, 평화를 만들 수 있다”며 “우리 군은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한 강력한 국방력으로 정부의 노력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로 8번째를 맞은 서울안보대화는 아시아·태평양지역 다자안보협력과 한반도 평화정착 방안을 논의하는 국방차관급 다자협의체다. 이번엔 ‘함께 만드는 평화, 도전과 비전’을 주제로 6일까지 열린다. 4개 본회의와 3개 특별세션에 50여개 국가와 5개 국제기구에서 온 국방관리, 전문가들이 참가한다. 이번 회의에는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이 미국 수석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미국은 이 행사에 매년 국방부 차관보나 주한미군 부사령관 등을 대표로 보내왔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재인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선언에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가 강한 유감과 실망을 표시한 터라 미국의 참석 여부에 한때 관심이 쏠린 바 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이날 개회식을 전후해 정 장관과 박한기 합참의장, 최병혁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 한국군 수뇌부와 만나 인사를 나눴다. 개회식이 끝난 뒤에는 정 장관 등과 손을 잡고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이후 유엔군사령부(유엔사)를 통한 한국군 지휘권 논란 등 최근 불거진 문제와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에는 “어떤 질문도 받지 않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개막식 축사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확산하면서 항구적으로 정착시키는 일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북-미 간 실무대화가 조속히 재개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남북한과 미국은 지난해부터 북한의 비핵화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하고, “뚜렷한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지만 남북한과 미국은 그 길을 찾기 위한 대화의 궤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총리는 이어 “한국은 세계적 냉전 해체 이후의 다자안보협력체제에 동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반도의 냉전을 해체해가야 하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며 “한국의 그러한 노력을 국제사회가 이해하고 협력해주시길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이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국제공조’를 주제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한 조지프 디트라니 미국 미주리주립대 교수는 “내가 보기에는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 한국, 국제사회와 정상적인 관계를 위해서 핵무기를 포기하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고 평가했다. 6자회담 미국 차석대표를 지낸 디트라니 교수는 발제문을 통해 “김정은은 경제발전에 집중해 북한 2400만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을 원한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그는 이어 “김정은은 핵무기 및 핵시설 폐기로 나아가기 전에 안전보장을 필요로 한다”며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게 비핵화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전제 하에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관계 정상화, 평화조약 체결, 제재 해제 등을 끌어내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디트라니 교수는 “북한이 비핵화에 동의한다는 것은 모든 핵무기와 시설을 완전하게, 검증가능한 방식으로 폐기하고, 검증단의 미신고 핵시설 의심지역 방문을 허용하는 것을 의미하며 북한도 이를 이해하고 있다”며 “그 대가로 북한은 미국과 관계 정상화, 한국전쟁을 끝내는 평화조약 체결, 모든 제재의 해제를 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목표들에 동의하고, 그 목표들을 이루기 위한 로드맵을 준비해 차기 (북-미 정상)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이 이를 추인하는 것이 이상적인 시나리오”라며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방위상을 지낸 모리모토 사토시 다쿠쇼쿠대 총장은 발제문을 통해 “북한의 핵시설이나 핵무기 창고를 단순히 동결하는 타협안에 동의할 수 없다”며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설치,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과 같은 문제를 조정하고 처리하기 위해서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다자적 틀이 구축되어야 한다면 일본은 그 틀에 참여해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모리모토 총장은 “평화 프로세스를 위해서 미국, 한국, 일본은 긴밀하게 서로 협력해야 한다”며 “한-미동맹, 미-일동맹이 더 긴밀해져야 하고, 한국과 일본도 안정된 미래를 위해 더욱 긴밀히 협력하며 서로를 지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강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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