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인 2017년 5월1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제앰네스티가 연 기자회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처벌 중단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하는 거리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이들을 위한 대체복무제 입법 시한이 10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입법이 제때 이뤄지지 않을 경우 병역 판정에 혼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를 병역의 종류로 규정하지 않은 현행 병역법 5조 1항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하고, 오는 12월31일까지 병역법을 개정하라고 못박은 바 있다.
15일 국방부와 병무청에 따르면 국회 국방위원회는 오는 19일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관련 법률안에 대한 공청회’를 연다. 이번 공청회에서는 국회에 계류 중인 정부안 등 10건 안팎의 대체복무제 입법안을 놓고 토론이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 입법안은 대체복무 기간 등에서 큰 차이를 보여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국방부는 대체복무에 필요한 시설 등을 확보하려면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늦어도 10월까지는 입법 절차가 마무리돼야 시행에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핵심은 대체복무 기간이다. 정부는 대체복무 기간을 2021년 말까지 18개월로 줄어드는 육군 병사의 2배인 36개월로 하되, 제도가 정착하면 1년 범위에서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시민·인권단체는 현역의 1.5배(27개월)가 넘는 복무기간은 징벌적 성격이 강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여당 일각에선 이를 반영해 27개월안도 발의했으나, 야당에서는 40개월안과 60개월안까지 제출해놓은 상태다.
대체복무 분야와 형태에 대해서도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는 교정시설에서 합숙근무하는 안을 제출했으나, 시민·인권단체는 이것 역시 징벌적 성격이 강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대체복무 분야를 사회복지, 재난구호 등으로 넓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시민·인권단체는 정부가 ‘양심적 병역거부’란 용어를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거부’로 변경한 데 대해서도 헌재의 취지에 어긋난다며 비판하고 있다.
대체복무제 입법 논의는 지금까지 여야 대립 속에서 표류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지난 7월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정부안을 설명했지만, 북한 목선의 삼척항 입항 사건 등에 밀려났다. 일각에서는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따른 여야 대립이 격화할 경우 자칫 대체복무제 입법 논의 자체가 실종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체복무제 입법이 연내 이뤄지지 않는다면 내년 1월1일부터는 병역 판정 업무에 혼란이 불가피하다. 병무청 관계자는 “헌재가 헌법불합치로 판단한 병역법 5조 1항은 현역·예비역·보충역 등의 처분 근거가 되는 만큼, 대체 입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병역 판정에 지장이 생긴다”며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병무청은 헌재 결정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입영을 연기해주고 있다. 지난 7월 말 현재 입영연기원을 제출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모두 498명이다.
유강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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