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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실무협상 직전 SLBM…북, 미국 압박 ‘초강수’

등록 2019-10-02 21:13수정 2019-10-02 21:21

뉴스분석

“북-미 협상 재개” 13시간만에
해상에서 발사…‘북극성’ 추정

협상 앞두고 강력한 무력시위
‘미국의 양보’ 끌어내려는 수단
미 “안보리 결의 준수해야” 촉구
북한이 지난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지도하에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다시 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11일 보도했다. 지난달 24일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과 달리 이번에는 시험사격이 ‘성공했다’는 발표가 없다. 조선중앙텔레비전이 공개한 사진에서 초대형 방사포가 화염을 뿜으며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지도하에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다시 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11일 보도했다. 지난달 24일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과 달리 이번에는 시험사격이 ‘성공했다’는 발표가 없다. 조선중앙텔레비전이 공개한 사진에서 초대형 방사포가 화염을 뿜으며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실무협상 재개 일정을 발표한 지 13시간 만에 ‘북극성’ 계열로 추정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쏘았다. 북극성은 사거리가 1000㎞ 이상인 준중거리 탄도미사일이다. 북한은 지난 5월 이후 열차례에 걸쳐 단거리 발사체를 쏘았지만,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쏜 건 처음이다. 북-미 실무협상을 앞두고 공세 수위를 한층 높인 것이다.

합동참모본부는 2일 “우리 군은 오늘 오전 7시11분께 북한이 강원도 원산 북동쪽 해상에서 동쪽으로 발사한 미상의 탄도미사일 1발을 포착했다”며 “이번에 발사한 탄도미사일은 북극성 계열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원산 북동쪽 17㎞ 해상에서 발사된 이 미사일의 최대 고도는 910여㎞, 사거리는 약 450㎞로 탐지됐다. 북극성 계열 탄도미사일의 사거리가 1000~3000㎞인 점을 고려하면, 고각으로 발사해 사거리를 줄인 것으로 추정된다. 합참은 “추가적인 제원은 한-미 정보당국이 정밀분석 중에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이번 발사는 “북-미가 오는 4일 예비접촉에 이어 5일 실무협상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는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발표가 나온 다음날 이뤄졌다. 북한이 임박한 북-미 협상을 앞두고 미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한단계 더 끌어올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하지 않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약속을 지키면서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발사라는 한층 강력한 무력시위를 통해 이번 협상에 미국이 ‘새로운 셈법’을 들고 오기를 압박했다는 것이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은 잠수함이라는 투발수단의 은밀성 때문에 단거리 미사일과는 전략적 의미가 다르다. 미국을 실질적으로 위협하기엔 북한 잠수함의 능력이나 미사일의 성능에 의문이 제기되기는 하지만,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략폭격기와 함께 미국이 3대 ‘핵 전력’으로 꼽는 민감한 무기다. 북한과 협상해 미국의 안전을 확보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업적 과시에 그림자가 드리울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압박함으로써 미국의 양보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번 실무협상에서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하면 더욱 강한 무력시위에 나설 수 있다는 신호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미국이 이번 협상에서 새로운 셈법을 제시하지 않으면 인공위성 발사 형식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미 간에 이번 실무협상 의제가 완전히 조율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이 일정을 발표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북한의 이런 밀어붙이기를 뒷받침한다. 미국은 북한과의 실무협상 일정에 대해 ‘일주일 이내’라고 뭉뚱그려, 예비접촉과 실무협상의 날짜를 적시한 북한과 온도 차이를 보였다. 조 연구위원은 “미국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직 북한과 의제를 조율하지 못했거나, 예비접촉이라는 개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할 수 있다”며 “예비접촉 성과가 좋지 않을 경우 북한이 실무협상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대비해 국방력을 강화한다는 의미도 이번 발사에 담겨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수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군사 전략적 측면에서 북한 나름의 프로그램을 진행시키는 의미도 있다”며 핵 폐기를 염두에 두고, 안전보장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능력을 완성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우리는 확실한 비핵화 의지가 있지만, 미국이 머뭇거리면 우리의 핵 능력은 증강된다는 시위를 벌이면서, 미국이 협상에 더 적극적으로 나오라는 신호를 보낸 측면도 있다”고 짚었다.

미국이 이런 북한의 압박에 어떻게 반응할지가 관건이다. 현재로선 협상의 판이 깨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미 국무부 공보실 관계자는 2일 로마에서 “우리는 (북한에) 도발들을 자제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에 따른 의무를 준수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고 비핵화를 달성하는 데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협상에 임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현재 이탈리아 로마를 순방 중이다. 국무부 관계자의 발언은 이번 미사일 발사가 북한의 모든 탄도미사일 발사를 금지한 안보리 결의 위반이지만, 이를 계기로 북한과 협상을 중단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북-미 협상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기 위한 실무협상, 미국은 비핵화 성과를 내는 실무협상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중점의 차이는 있지만, 양쪽 다 이번 실무협상을 제대로 하겠다는 뜻은 확고하다”며 “협상의 판이 깨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 실무협상의 북한 쪽 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 3일 오후 베이징을 출발해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향하는 중국 국제항공 여객기 항공권을 예약한 것으로 확인된 것도, 실무협상이 예정된 일정대로 스톡홀름에서 진행될 것임을 보여준다.

미국이나 유엔 안보리에서 이번 발사가 안보리 결의에 어긋난다는 점을 문제 삼더라도, 북-미 대화가 진전될 조짐을 보이는 최근의 흐름을 고려하면 당장의 추가 제재는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엔 안보리는 2016년 4월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때도 비난 성명을 채택하는 데 그쳤다.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이날 상임위원회 긴급회의를 열어 북한의 이번 발사에 강한 우려를 표시하고 “북-미 협상이 성공적으로 개최되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구축을 위해 실질적인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함께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강문 박민희 이완 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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